노래산

노래산성지와사적지

성지이름 노래산
성지사진 previewImg
간략설명 험준한 태백산맥의 노래산에 세워진 교우촌
소속교구 안동교구
주     소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노래리 568(청송호 상부댐)
전화번호 (054)872-2051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ssungdang
[사진/그림]   [자료실]
성지소개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 속한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의 노래산에는 1801년 신유박해 후 충청도 · 전라도 · 경상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모여 교우촌을 이루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신자들은 산꼭대기의 분화구처럼 생긴 이곳에서 넓은 산지를 개간해 화전을 일구며 외교인들과는 일체 접촉을 하지 않고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자들은 15년 동안 거의 흉년을 모르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는데, 1814년 전국적인 대흉년과 들어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경상도 지방은 수해까지 겹쳐 더욱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노래산 교우촌을 드나들며 장사와 구걸을 일삼던 전지수란 사람이 빈궁으로 인해 신자들로부터 받는 애긍이 줄어들자 신자들을 밀고하여 얼마 안 되는 재물마저 빼앗으려 했습니다. 전지수의 안내로 1815년 교우들이 함께 모여 부활 대축일을 지내고 있을 때 경주 포졸들이 들이닥쳐 모든 신자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렇게 체포된 신자들은 경주 진영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으로 인해 배교하기도 하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가 고문과 굶주림으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기도 전에 옥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대구 감영까지 이송된 신자들 중에서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여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 때까지 남은 신자는 노래산의 고성대 · 고성운 · 김화춘 · 구성열과 머루산의 이시임, 곧은정의 김희성, 우련전의 김종한 등 모두 7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대구 감영에서 17개월 가까이 옥살이를 하다가 1816년 12월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했습니다. 순교 후 그들의 시신은 형장 인근에 매장되었다가 이듬해 3월 2일 친척들과 교우들에 의해 수습되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져 안장되었으나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노래산 교우촌은 없어지고 신자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오늘날 노래산 교우촌 터 주변에는 2007년 3월 청송 양수발전소가 준공되고, 발전을 위한 청송호의 상부댐이 노래산 정상 밑에 건설되어 교우촌 자리를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들 7명의 순교자들은 모두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요일 시간 기타사항
11:00 교중미사, 미사 일정은 청송 성당 것입니다.
20:00 동절기 19:30
10:00
20:00 동절기 19:30
20:00 주일미사, 동절기 19:30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로 전화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위치 안내

교통 안내

<승용차>

청송 읍내에서 월막교를 건너 바로 우회전한 후 덕천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청송 양수발전소 표지판을 따라 10km 정도 가면 청송호 공원을 지나 청송호 상부댐인 노래호에 도착합니다. 댐 건설로 노래산 정상이 많이 변해 자세한 교우촌 터를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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