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81) 겟세마니에서의 기도(루카 20,39-46)

(가톨릭평화신문)
▲ 예루살렘 성 밖 올리브 산에 있는 겟세마니 대성당 전경. 【CNS 자료 사진】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고별 말씀을 하신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그 대목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22,39)

이 구절에서 우선 눈여겨볼 것은 “늘 하시던 대로”라는 표현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올리브 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나가 묵곤 하셨다”고 기록했는데(21,37), “늘 하시던 대로”란 밤이면 올리브 산으로 나가 묵곤 하시던 것을 말합니다. ‘늘 하시던 대로’라는 표현은 또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 어디에서 묵으시는지를, 제자들도 알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곳’은 올리브 산 어디일까요? 루카복음에서는 그곳이 어디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서는 ‘겟세마니’라고 언급합니다.(마태 26,26; 마르14,32) 겟세마니는 올리브 기름 같은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올리브 산의 겟세마니에는 지금도 올리브 나무들이 정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겟세마니에 이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22,40-41)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고 당부하신 말씀은 최후 만찬에서 시몬에게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22,31)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제 곧 사탄의 유혹이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 말씀으로 사탄의 체질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곧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도가 필요함을 일깨우고 계십니다.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이라면 제자들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동작을 볼 수 있고 속삭이며 기도하지 않는다면 기도 소리조차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거리를 사이에 두고 예수님께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십니다. 유다인들은 기도할 때 보통 무릎을 꿇지 않고 서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고 기도가 간절하다는 표시입니다. 사정이 얼마나 절박하고 기도가 얼마나 절박한지는 루카가 전하는 예수님의 기도 내용과 예수님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기도 내용부터 살펴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22,4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세 번이나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을 정도로 당신이 사람들 손에 넘어가 죽게 될 것임을 잘 알고 계셨고,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또 당신이 겪어야 할 그 고난이 인간적으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것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12,50) 하신 말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난이 눈앞에 닥치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당신이 완수해야 할 사명인 줄 아시면서도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드셨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는 청은 예수님의 그런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수난의 잔을 거두어 달라는 청으로 기도를 마무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셨습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러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그분의 기운을 북돋아드렸다”(22,43)고 루카는 전합니다.

이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22,44) 땀이 핏방울처럼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기도가 애절하고 절절하다는 표시입니다. 이 역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예수님이지만 눈앞에 다가온 수난과 죽음의 고통은 인간적으로는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들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는 맞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일부 수사본(手寫本)에는 22장 43절과 44절의 내용이 아예 빠져 있다고 합니다.

고뇌에 차서 피땀을 흘리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스승 예수님을 제자들은 처음에는 유심히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당부 말씀에 함께 기도를 바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소리까지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제자들의 마음이나 태도는 어떠했을까요? 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이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22,45)고 전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와서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왜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22,46) 하고 말씀하십니다. 따로 떨어져 기도하러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당부와 달리, 제자들은 슬픔에 지쳐서 잠이 들고 만 것입니다. 피땀을 흘리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제자들 또한 한없이 슬펐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기도로써 슬픔을 극복하기에는 아직 부족했습니다. 지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생각해봅시다



1. 지난 호(1482호 9월 16일 자) ‘생각해 봅시다’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칼, 곧 영적인 무기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고 말씀드렸는데, 그 답을 이번 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는 말씀을 두 번이나 하십니다.

2. 그런데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기도, 입에 발린 기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기도여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처럼 피땀을 흘리지는 못할지라도 기도를 드릴 때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절절히 아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정적으로 바쳐야 하는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기도를 통해서 내가 바라는 것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주님께서 뜻하시는 바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천사가 예수님께 기운을 북돋아 드린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