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편지] 기다림의 여유 / 김귀자

(가톨릭신문)
17년 전쯤이었을까. 함께 글공부를 하던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식을 나누지 못하고 지낸지 거의 6개월 만이었다. 그녀는 공부할 때 복사비 등 잡비로 쓰기 위해 거두었던 회비도 조금 남아있고 문우들이 보고 싶으니 한번 만나자고 했다. 사실은 정기적인 만남을 계속 갖기 위해 일부러 잔여금을 남겨놓았던 것인데 서로 바쁘고 시간이 맞지 않아 모임을 미뤄왔던 것이다.

몇 차례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여러 사람이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조정해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날도 변경할 수 없는 중요한 선약이 있어 피하고 싶었지만, 조금 늦게 합류하기로 양해를 구하고 모임 참석을 결정했다.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예상보다 더 늦어졌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어렵게 잡은 약속이라 취소하기도 그렇고, 휴대전화 배터리까지 떨어져 더 늦어진다는 연락조차 취할 수 없었다.

뒤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주선했던 동료 혼자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혼자야?”

“어서와. 바쁜데 급히 오느라 수고했어. 늦어서 마음이 더 바빴지? 애썼어.”

한 사람은 감기로 아파서 못 나오고, 두 사람은 나왔다가 공교롭게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다시 돌아갔단다.

“그럼 다음에 만나고 그냥 들어가지. 혼자서 얼마나 지루했어. 미안해.”

“아니야. 지루하지 않았어. 기다린 덕분에 만나서 반갑고 책도 한 권 다 읽었잖아.”

기다림에 지쳐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미안해하는 나에게 환하게 웃으며 「작은 이야기」라는 조그만 잡지 한 권을 내밀었다.

“이 책은 아까 산 건데 가져가서 봐. 난 다 읽었으니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데, 책 선물까지… 고마워.”

전시회 구경도 어차피 내가 오면 볼 거니까 같이 보려고 기다렸단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혼자서 누굴 기다린다는 것은 단 몇 분도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대체로 기다림에 인색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잃어버리고 산다.

작은 배려는 따스하고 넉넉한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소중한 평화다.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다림의 여유가 없는 삶은 얼마나 초조하고 지루하며 허전한가. 기다림은 인내다. 인내는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기쁨·평화·인내·친절·선행·진실·온유·절제(갈라 5,22-23) 중 하나다.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기다림은 우리의 귀중한 재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마음 편히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윤기 있는 값진 삶을 살아간다. 이런 태도는 삶을 향기롭고 빛나게 한다.

나는 기다림이 짜증스럽고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그녀에게 느꼈던 향기롭고 값진 인내의 열매를 떠올린다. 가방 속에 작은 책 한 권이라도 넣고 다니며 부족한 양분을 섭취하고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때로는 누군가에게도 유익한 삶의 향기를 나누고 전해보면서….

새삼 감회가 새롭다. 그녀가 보고 싶다. ‘건강하지?’ 안부를 묻고 소식을 띄워본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귀자 (마리아) 시인·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