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땅, 평화를 심는 미얀마교회를 가다2]오랜 내전으로 늘어난 실향민… 값싼 마약에 노출된 아이들

(가톨릭평화신문)
▲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성 요셉 팔라나 IDP 캠프’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얀마 카친 주 국내 실향민들.



분쟁의 땅, 평화를 심는미얀마 교회를 가다

2. 눈물의 옥(玉)… 카친 IDP 캠프를 가다


“제한된 지역 방문 시 처벌 받을 수 있음”

미얀마 최북단 지역 카친 주 미치나공항에 내리자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을 표시한 경고판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국제선 출입국 심사보다 더 깐깐하게 체류 기간과 장소, 방문 목적 등을 기재하고서야 공항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도 경고판이 시선을 따라 붙었다. 중국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미얀마 최북단, 천연자원의 보고, 차별과 수탈의 역사가 서린 땅, 정부군과 소수민족 카친 반군의 내전이 끊이지 않는 곳, 미얀마 민족분쟁의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IDP 캠프에서 도움 기다리는 실향민들

A씨는 올 초 쫓기듯 고향 마을을 떠나왔다. A씨 고향은 카친독립군(KIA)이 점하고 있던 마을인데 어느 날 밤 정부군이 행진해 올 것이라 예고했고 갑자기 마을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밤 11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온 마을이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1000명이 줄지어 밤길을 걸었다. 불이 보이면 총을 쏠지도 모른다는 말에 밤새 어둠 속을 걸었고 초소를 지날 땐 너무 무서워서 기도했다. 다행히 새벽 6시쯤 다른 마을에 도착해 구조팀과 접선했고 두 마을을 더 떠돌다 IDP(Internally displaced persons, 국내실향민) 캠프로 왔다. A씨는 수개월째 캠프 내 한 칸짜리 방에 가족들과 머물며 구호의 손길에 기대고 있다.

‘성 요셉 팔라나 캠프’에서 만난 A씨의 극적인 고향 탈출기다. 이곳은 A씨처럼 무력분쟁을 피해 온 국내실향민들이 머무는 곳으로 인장양, 숨프라붐 마을 출신의 170여 가구가 함께 살고 있다. 카친 주에는 160여 곳의 IDP 캠프가 있는데 이곳은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50여 개 캠프 중 하나다.

캠프의 오후는 한산했다. 아이들은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와 유치원에 갔고 몇몇 여인들만 집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오면서 삶을 잃었다. 가장이 고향에 남으면서 이산가족이 된 집도 많다 보니 캠프의 공기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얇은 칸막이로 겨우 집과 집 사이를 분리해둔 나무집과 공용 빨래터, 화장실은 남루한 생활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카친 사람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무력 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경험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분쟁과 피난의 역사는 깊다. 캠프에서 만난 60대 B씨는 어린 시절 정글로 숨어들어 간 기억이 수없이 많다며 이번 캠프 생활은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어둠을 가리키는 것 같아요. 캠프에 더 머물고 싶지 않지만 돌아가더라도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서워요. 땅에는 지뢰가 심어져 있을 테고 싸움이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니까요. 무장군이 논에도 못 가게 하고 나무도 못하게 할 텐데요. 부자는 아니지만, 집도 있고 생계가 다 그곳에 있었는데 여기선 교회나 NGO 지원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니 힘듭니다.”

▲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미치나 ‘성 요셉 팔라나 IDP 캠프’아이들이 공부방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뿌리깊은 지하경제,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

분쟁은 삶의 터전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파괴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집집이 최소 두 명은 마약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헤로인을 맞으려면 500짯(약 440원)이면 돼요. 초콜릿보다 싸고 구하기도 너무 쉽죠. 젊은 여성들은 상당수가 계약결혼으로 중국에 팔려갑니다. 아이를 하나 낳고 또 다른 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집으로…. 유흥업에 흘러가기도 하고요.”

교구청에서 만난 노엘 나우 랏(미치나교구 사회사목 담당) 신부가 담담하게 카친의 상황을 소개했다. 오랜 분쟁 속에서 카친은 버려진 땅이 됐다. 정부군과 반군이 총부리를 겨누는 동안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지하경제가 뿌리내렸다. 세계적인 품질의 옥, 루비가 나오는 풍요로운 땅은 오히려 카친족에게는 눈물의 씨앗이 됐다. 중국 자본과 정부, 군부의 이해관계 속에서 지역은 멍들어갔고 ‘마약, 에이즈, 인신매매’는 일상이 됐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아픔에는 눈을 감고 있다.

미치나교구가 설립한 ‘부활 재활센터’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돌보는 아슈에나 아파오(성 골롬반 외방선교수녀회) 수녀는 “망망대해에 물방울을 흘리는 심정”이라고 말한다. 마약 중독은 넘쳐나는데 도움의 손길은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수많은 아이가 학교 대신 정글 벌목장이나 바나나 플랜테이션에 가서 일해요. 사업장에서는 어린 노동자들을 고되게 부리면서 암암리에 마약을 권해요. 현실의 고달픔을 잊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오는 유혹이 마약이에요. 투약 바늘을 나눠 쓰다 보니 에이즈 감염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처벌은 없어요. 국경지대로 가면 양귀비밭이 많지만, 거대 마약상은 건드리지 않고 어쩌다 한 번씩 작은 판매자만 처벌하는 정도예요. 우리 센터에 제발 자기 아들을 받아달라고 찾아와서 우는 엄마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죠.”

카친 주에 걸쳐 있는 미치나ㆍ바모ㆍ라시오교구는 뿌리 깊은 분쟁의 역사를 끊기 위해 2015년부터 주교 모임을 비롯한 다양한 사목에 힘을 모으고 있다. 세계 교회를 향해 카친 분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가하면 IDP캠프 운영, 가정사목 등을 함께하고 있다. 60년을 이어오는 관성적 공포와 무력을 멈추고 평화를 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회의 발걸음에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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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친 분쟁=미얀마는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을 비롯해 샨, 친, 카인, 리카인, 카친 등 크고 작은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나라다. 카친은 미얀마가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부터 민족 자치 독립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카친독립군(KIA)을 중심으로 정부군과 내전을 벌여오고 있다. 1994년 평화협정을 맺었으나 2011년 정부와 중국이 합작 건설한 수력발전소 인근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무력 충돌로 인해 다시 분쟁이 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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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유은재 기자 you@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