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소명을 찾아준 아이청년

(가톨릭평화신문)



“형아가 말을 할 수 없어요? 어디가 아파요? 선생님 힘들겠어요.” 장애 이해 교육 수업 중에 유치원생이 이렇게 질문하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울컥했다. 그 아이가 강의를 마친 나를 안아주었다. 이십사 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도 아들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6살 아이의 한마디가 24살짜리 토마스보다 훨씬 났구나. 아들은 이십 년이 넘도록 치료 교육을 하고 있는데 유치원 아이만 못한 것인가? 토마스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위로를 받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24시간 수고하며 돌봐도 적당한 표현으로 공감해 주지 않았다.



나 : 하느님! 저 비비안나예요.

주님: 응, 그래 비비안나야. 오랜만에 수도원에 왔구나. 어떻게 왔니?

나 : 인생 2막의 부르심을 찾으러 왔어요.

주님: 그래, 기특하구나. 어떤 소명을 생각해 보았니?

나 : 저희집에 장애인이 두 명이 되었어요.

주님: 알고 있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나 : 조금 힘들고 많이 아팠어요. 그렇지만 하느님 덕분에 기쁠 때도 있었어요.

주님: 그랬구나. 너도 남들처럼 토마스랑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

나 : 토마스랑 얘기도 하고 싶고, 아들이 아플 땐 어디가 아픈지 궁금했어요.

주님: 그렇구나. 토마스 속마음은 어떨 것 같니?

나 : 아들이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고 가 버려 답답하고, 누가 이유 없이 때릴 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주님: 사람들이 너희 가족에게 어떻게 했는지 말해 줄 수 있겠니?

나 : 예전엔 비난하며 ‘장애자’라고 놀리고 무시하기 일쑤였어요. 저희도 같은 하느님의 자녀인데 사람들은 외면했어요.

주님: 속상했겠구나. 이제부터 너희를 어떻게 대해 주면 좋겠니?

나 : 장애인 가족도 동등한 인격체니 그저 편견 없이 그대로 봐 주면 좋겠어요.

주님: 그렇구나. 그럼 장애인의 부모로서 앞으로 기약 없는 십자가를 어떻게 지고 갈 거니?

나 : 네, 어렵지만 주님과 함께 떳떳하게 지고 갈 거예요. 작은 예수님이라 여기며 돌봐주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할 거예요.

주님: 좋은 생각을 했구나. 내가 너희를 끝까지 지켜줄게.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나 : 하느님, 고맙습니다. 저도 이제부터 마음 아픈 사람이나 장애인 가족을 도와주며 기쁘게 살게요.





수도원 피정에 가서 하느님과 나눈 대화이다. 제대 앞에 나와서 낭독하는데 참으려 해도 눈물이 나서 제대로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신부님은 오래전 발달장애가 있는 토마스를 키우며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마음 아픈 이들을 위한 피정’을 열어 주었다. ‘하느님의 이끄심’이라 생각했다. 남편에게 휴가를 내 아들을 돌봐 달라 부탁하고, 결혼 후 처음 집을 떠나 피정을 했다.

토마스도 어리고 예측할 수 없는 일상으로 우울 불안이 심하던 때였고, 아들과 함께 매일 치료실을 다녀도 발전이 없길래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 월급의 반을 특수교육비로 쓸 때여서 큰애와 남편이라도 편히 살게, 둘이 차도로 뛰어들어 버릴까 하는 끔찍한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때마침 수도원에 가서 하느님의 위안을 받고 아들을 돌볼 작은 용기를 얻어왔다. 나를 살게 해 준 피정이었다.

그러고서 아들 교육에 몰입해 살다 오랜만에 수도원 피정에 참여했다. 신부님께서 하느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라 하셔서 적은 게 앞부분의 대화이다. 주님의 집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묵상했다. 아들이 세상에서는 아직 인정을 못 받고 있지만 하느님 창조의 뜻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마음은 아이고 몸은 청년인 아들을 떼어 놓고 가슴 벅찬 한때를 보냈다.



일상으로 돌아와 콩자반을 하려고 서리태를 불려놓고 진간장을 찾았다. 그런데 양념 칸을 찾아봐도 진간장이 없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혹시나 하고 아들을 불렀다. “아들! 진간장 어디 있어요? 엄마가 콩자반을 해야 하는데 없어졌어” 하니 아들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모르겠어요. 없어졌어” 그런다. “빨리 가서 찾아와!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혹시나 하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가 보니 역시나 거기에 진간장 통이 있다. 자주 일어나는 우리 집의 엉뚱한 풍경이다.

하느님의 선물인 아들은 이십 대 중반의 발달장애인이다. 눈 맞춤이 잘되지 않고 말이 늦어 두 돌부터 안고 언어치료실을 다녔다. 그간의 세월 동안 음악치료, 미술치료, 짐보리, 운동 등 작은 집 한 채의 비용을 쏟아 부었다. 중학교 땐 이유 없이 반 애들한테 해코지를 당하기도 하며, 어렵사리 일반 중 고교 학습도움실(특수학급)을 졸업했다. 요즘은 복지관을 다니는데 재활용품 분리수거에 빠져 있다. 처음에 복지관 선생님과 내가 가르쳐 주어 분리수거를 곧잘 했다. 오랜 세월 성당을 다니며 성실히 살아온 아들이 좀 성장했나 싶어 기쁘고 듬직했다.

그것도 잠시 재활용품 분리수거에 집착하는 것이다. 오가는 길목에 음료수 캔이 있으면 주워서 쓰레기통이 있는 곳까지 들고 가 버렸다. 심지어 집에서도 양념 칸에 양념이 남아 있는데 버려서 가족을 깜짝 놀라게 한다. 예전엔 생수나 우유도 재활용 쓰레기를 만들기 위해 버렸다. 목욕 용품도 많이 남았는데 버리기 일쑤였다. 처음엔 분리수거라는 좋은 습관으로 잘 가르쳤는데, 어찌 이리 부작용이 생기는지 24시간 눈을 떼지 않고 보살펴야 했다.

식구들이 계속 관리하니 줄어들긴 해도 장애 특성상 고착된 행동을 수정하기 어려웠다. “주님! 도대체 어떻게 하면 토마스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제발 살펴주시옵소서.” 하루에도 수십 번 십자성호를 그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들에게 안수하듯이 기도를 하고 반성문을 쓰게 해도 재활용품 집착을 끊기가 어려웠다. 식구를 긴장시키고 가족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아들은 장기간 언어치료를 해도 아직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


▲ 삽화=장희원



한 번은 마구 울면서 전화가 왔다. “토마스, 무슨 일이야? 아빠 잃어버렸니?” “아니에요.” “아빠 바꿔 봐.” 그날따라 남편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그날은 몹시 아파 시름하는 나를 쉬게 하려고 부자가 큰마음 먹고 온천에 다녀오기로 한 날이었다. 기차 시간이 어중간해 신도림에서 돈가스를 먹고 지하철을 타고 룰루랄라 소풍 가듯이 떠난 날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내달려 기차가 수원쯤 갔을 때 아들이 갑자기 ‘핸드폰 없어요. 핸드폰 없어졌어’라고 얘기를 했다. 계속 지하철에서 핸드폰 찾아야 한다고 울먹였다.

남편은 고민 끝에 수원에서 내려 혹시나 하고 신도림의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푸드 코트에 가서 찾아도 없던 핸드폰이 기적같이 어느 손님이 맡겨놓았다며 다른 식당에 있었다. 간신히 찾았으나 이미 시간은 해 질 녘이었다. 핸드폰을 찾아 집으로 가자 하니, 아들이 그제서야 “온천에 가야 해요” 하며 다시 온천에 가자고 소리를 질렀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데 도무지 이해시키기 어려웠고 다음 주에 가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온천을 가지 못해 슬퍼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울었다. 키가 185cm나 되는 아들이 자꾸 우니까 시선이 집중되고 남편은 곤욕을 치른 모양이었다. 아픈 나를 쉬게 하려고 부자간에 온천 다녀오려다 핸드폰 사건이 생겨 혼이 나간 하루였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단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날마다 새로운 드라마를 찍으며 산다.

그럼에도 기적을 주시어 삐뚤빼뚤 쓰지만 매일 성경과 일기 쓰기도 하고 문서 작성까지 하는 주님의 자녀이다. 야무진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컴퓨터 ITQ 한글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느님의 은혜로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도 배워 조금씩 치고 있다. 나보다 피아노를 잘 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들이 쳐 주는 ‘피노키오’, ‘사랑의 인사’, ‘백조’, ‘사랑의 신비’ 등의 연주가 지친 심신을 위로해 준다.

우리 집 화장대 위에 여러 가지를 붙여놓았다. 바삐 살다 보니 기도할 곳이 화장대 앞과 싱크대 앞이다. 화장대 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진이 있다. 우리를 살게 하는 ‘자녀를 위한 기도’,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 ‘성가정에 드리는 기도’도 붙여놓고 자주 드린다. 싱크대 앞유리에는 토마스가 쳐 준 평화를 구하는 기도, 구마경, 아침 저녁기도, 일을 시작하고 마칠 때 바치는 기도, 시편 91편, 128편이 붙여져 있다. 매일 반찬을 하거나 설거지할 때마다 기도를 드린다.

 

 

장애아들을 쓰임 받는 존재로 이끌려고 이십 년 넘게 애쓰는 가운데, 몇 년 전 큰 우환이 생겼다. 신심이 좋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던 시어른 안나님이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그때부터 또 다른 고행이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안나님을 살려보려고 기도는 물론이거니와 코 석션, 입안을 거즈로 닦기, 욕창이 안 생기게 좌우 번갈아 누이기, 기저귀 갈기, 목욕시키기, 손발톱 깎아 드리기며 간병도 꾸준히 했다. 안나님을 일으켜달라고 기도하며 정성껏 간병을 하니 처음엔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뇌를 많이 다친 탓에 몇 달 뒤부터 재활 훈련을 해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틀이 멀다 하고 간병 하느라 병원에서 살았고, 아기가 된 안나님을 좋아지게 하려고 아들에게 언어치료 하듯이 말도 가르쳤다. 그녀의 식사를 코 튜브로 시간 맞춰 챙겨야 했으므로 정작 내 식사는 놓치기 일쑤였다.
 

한번은 아들을 데리러 복지관에 가야 했는데, 안나님 병원에 있다가 시간을 놓쳐 토마스를 ○○역 벤치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잘못 들었는지 역으로 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자 혼자서 방과 후 활동을 하러 가 버렸을까, 아니면 누가 데려갔을까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또다시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경찰서에 신고하려던 찰나에 복지관 선생님이 왔다고 연락을 주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토마스를 제자리로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연신 기도를 하며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아들에게 달려갔다.
 

이렇게 갑자기 예고 없이 건강하던 안나님이 큰 사고로 와상 환자가 되어 몇 년째 병원 순례를 하자, 우리 가족 4명의 삶이 바뀌어 살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저를 집에 두고 자꾸 할머니 병원에 다녀오니 토마스도 없던 불안이 생겼다. 이러다 내가 쓰러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몸이 좋지 않아 가끔 하혈을 하기도 했고 불규칙한 식사와 과로, 스트레스로 점점 야위어 갔다. 남편이 거듭 재촉해 건강검진차 병원에 갔다가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위, 대장 내시경까지 했는데 심상치 않다며 재검을 하라는 것이다. 시간을 예약해 검사했더니 큰 수술을 해야 한단다. 세상에! ○○암이란다.
 

장애아들에 안나님까지 돌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어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앞이 캄캄했다. 양쪽을 신경 쓰다 보니 정작 내 건강에 신경을 못 썼다. 그 길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성체조배실로 달려갔다. “주님, 이건 아니잖아요? 어찌 기약 없는 십자가를 두 명을 주시나이까? 그간에 토마스를 키우며 애간장이 탔지만, 주님 덕분에 수없이 오뚝이처럼 일어섰어요. 이제 저를 쓰러뜨리면 토마스는 누가 돌보고 안나님은 어떻게 챙겨요? 늘 희생만 하는 큰애는요?” 대성통곡을 하며 주저리주저리 한참을 목 놓아 울었나 보다.
 

한동안 말없이 감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느님, 제발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이제 저는 어찌해야 하나요? 부디 저에게 복을 내리시어 제 영토를 넓혀 주시고, 당신의 손길이 저와 함께 있어 제가 고통을 받지 않도록 재앙을 막아 주십시오.’ 역대기 상권 4장 10절 말씀이 떠올랐다. 한참 뒤 하느님의 음성인지 뭔지 모를 울림이 있었다. ‘비비안나야.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잘하고 있다’라고 했다. ‘어! 이건 뭐지’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 음성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알 길 없다.
 

얼마 뒤 대학병원에서 수술했다. 남편이 휴가를 내서 챙겨주고, 토마스는 이번에도 큰애가 학교도 못 가고 며칠을 돌봐주었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벌벌 떨며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신발을 신고 집에 갈 수 있도록 집도의의 손을 이끌어 주소서. 말 못 하는 토마스를 두고 죽을 순 없어요. 아들이 말을 좀 할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 주세요. 동생 덕분에 고초를 겪는 딸도 너무 가여워요.’ 끊임없이 기도를 했는데 마취로 인해 이후의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 뒤 깨어보니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몸 곳곳이 뻐근하고 아팠다. 지금까지 몇 개월에 한 번씩 온갖 검사를 하며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기적같이 살려 주시니 고맙기 짝이 없다. 앞으로 몇 년은 더 남았다. 토마스와 안나님을 돌보라고 살려주신 것 같았다.
 

“주님, 부족한 저를 어여삐 보시고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태어났으니 앞으로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부르심을 행하며 살아야 했다. 큰 수술을 하고 살아나니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면역력이 떨어져 여기저기 아팠다. 시어른 기저귀를 갈아서 그런지 어쩐지 팔이 올라가지 않아 병원에 가 보니 오십견이란다. 예전에 오른쪽이 그랬는데 이번엔 왼쪽이 안 올라가고, 잠을 못 이룰 만큼 통증이 온 마음을 짓눌렀다. 원치 않던 불면증도 따라왔다.
 

아들과 장애인이 된 안나님도 돌봐야 했고 내 건강도 살펴야 했다. 삼중고였다. 사는 게 고해라더니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몸이 아프니 마음마저 나약해지고 갱년기 불안이 찾아왔다. 심정이 무너져 오직 신앙으로 극복해야 했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마음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기도가 되지 않았다. 퇴원하며 먹은 굳은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토마스는 계속 돌봐야 했는데, 애들한테 짜증을 내었고 아들도 불안한지 재활용품에 집착했다. 딸마저 지쳤는지 “또 할머니 병원에 가세요?” 그랬다. 왜냐면 내가 병원에 가면 본인이 동생을 돌봐야 했기에 힘들었던 것이다. 사는 게 부질없고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하느님 이게 뭐예요? 제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이리도 큰 형벌을 주시나이까?”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이달만 지내보자. 아니 이번 주만, 아니 하루씩 살아보자’ 해도 캄캄한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고 내가 어찌 될 것만 같았다.

 
 

 

▲ 삽화=장희원

 

그동안 생활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야 했다. 이러다 거룩한 성가정이 깨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쳐서 주님을 외면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려서 매일 미사와 가정기도를 시작했다. 불안이 가슴에 차올라 오랫동안 기도하며 짬짬이 기록해 두었던 묵상 노트를 펼쳤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테살로니카 1서 5장 16-18절이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말없이 나타나 우리를 살리시고 지혜와 자비를 주셨다.
 

그때부터 ‘감사 한줄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를 반추하며 일기도 가끔 쓰지만 바쁠 때는 감사했던 것을 억지로라도 찾아 쓰기로 했다. 처음엔 세상천지에 나만 힘든 것 같아 감사한 것도 없고 쓸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꾸 쓰다 보니 소소한 게 감사로 바뀌기 시작했다. 큰애도 감사 노트에 ‘나를 낳아주고 키워 주는 부모님께 감사하다. 가족을 위해 맛있는 밥을 차려주는 엄마께 감사하다’ 등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2014년 하반기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그 노트를 보면 우리 집의 근황을 알 수 있다. 집에 쓰나미가 밀려올 땐 감사 노트 한 줄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안나님도 그대로 병원에 누워 있고 상황은 바뀌지 않았으나 생각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니 원망마저 감사로 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인생은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풀린다 했던가. 올해 들어 감사 노트에는 이런 게 쓰여 있다. ‘이탈리아에 계신 신부님께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시어 감사하다. 현관 센서등을 갈아 끼워 준 남편에게 감사하다. 욕실 샤워기 헤드를 갈아준 딸에게 감사하다. 설거지를 해 준 토마스에게 감사하다. 학부모 연수 강의 잘하라고 격려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다 등 그간에 씨 뿌렸던 수많은 감사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아들이 복지관에 가 있는 시간을 쪼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일기처럼 글도 쓰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누군가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글을 써서 희망을 주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사람들에게 초록 신호에 건널 때도 끝까지 횡단보도 안으로 지나가야 한다는 것도 계속 알렸다. 더이상 안나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 키운 얘기도 써 보았더니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세상을 밝히는 글을 써서 지친 분들을 위로하고 싶다.

작년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몇 달간 연수를 받고 ‘장애  이해 교육 강사’ 자격을 취득하여 강의 봉사도 하고 있다. 토마스와 안나님 덕분에 살아있는 수업을 할 수 있어 고맙다. 컴맹에 가까운 내가 PPT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강의하는 것이 소명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음이 감사하고, 그렇게 배운 것으로 봉사며 수업을 할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치유자이신 주님, 저를 보살펴 주시어 여러분 앞에 서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매일 미사를 드려야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못 드리면 평화방송 미사를 드린다. 힘들 때마다 평화방송 앱으로 위로를 받는데 ‘가톨릭 뉴스’와 ‘기도를 부탁해’ 프란치스코 교황님 관련 소식 등이 쓰러질 때마다 많은 위로와 용기를 준다. 우리만 알기 아까운 보배로운 성구나 감동적인 강론이 많아 선교차 지인들께 띄워 드리고 있다.

 
 

동생을 챙기며 애쓰는 딸에게 마땅한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이다. 주님께서 토마스에게 수호천사를 붙여주시어 대화를 잘하게 도울 것이라 믿는다. 세수하고 얼굴을 닦으며 “사랑의 주님, 오늘도 살려주시고 지켜주소서. 아멘” 하며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몇 가지 일정을 하고 집에 오면 성가정상을 끌어안고 “사랑의 주님, 집으로 인도해 주시어 감사드리고 쓰러지지 않게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성가정이 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멘” 하고 기도를 드린다. 아무리 외롭고 힘든 날도 주님께서 돌봐주시어 여기까지 걸어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꿈같은 나날이다.

  

기도가 이루어져 작년부터 ‘성서 백주간’을 하고 있다. 그전엔 집회서 말씀을 먹고 살았는데 신명기나 시편의 말씀도 은혜롭고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을 준다. 성경 묵상과 나눔을 하니 삶이 더 간절하고 애틋하다. “치유자이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집에 초대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그간 성가정을 꾸려 살며 여러분의 기도와 도움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은총의 나날을 살게 도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저희에게 건강과 지혜, 용기와 평화를 주소서.” 지난번 묵상 때의 기도이다. 이렇게 기쁘게 살아도 되나 싶다. 살아있음이 그저 감사하다.
 

필리피서 4장 13절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는 우리 가족을 살게 하는 말씀이다.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아들이 거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불안하다. 어쩌면 앞으로도 지겨워 포기하다, 말씀 붙들고 일어나 다시금 용기를 낼 것이다. 힘겨워도 내게 보내준 십자가들은 은총의 선물이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찾게 해 준 원동력이다. 하느님께서 기적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리라 믿으며 모든 것을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리라. 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고생길에도 끝이 있단다” 하셨으니 반드시 그리되리라 믿으며 묵주를 돌린다.
 

이제 주님과 함께 인생 2막의 소명을 실천하러 가야겠다. 글도 쓰고 장애 인식 강의도 하면서. 엊그제는 5학년 수업을 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도 장애가 있는 큰형이 있는데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 덕분에 피아노도 잘 치고 컴퓨터도 잘한다고 했더니 “정말요?” 하면서 눈이 동그래졌다. ‘내 소명을 찾게 하려고 토마스를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엄마가 글을 쓰고 장애 이해 교육 강사가 될 수 있겠니!’ 아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오히려 아들로 인해 삶의 힘을 얻는다. 소명을 찾아 준 토마스가 오늘따라 보고 싶다. “하 선생님! 두 시간 강의료 2만 원 입금했습니다.” 아직 강의료는 봉사 수준이지만 주님께서 허락하는 한 PPT를 멋지게 만들어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