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 (14) 아이 마음 환히 밝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오랜만에 평일에 휴가를 내서 첫째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 남편은 바깥양반의 휴가로 모처럼 자유를 얻어 유치원 부모 교육에서 사귄 민지 아빠와 점심 약속을 했다.

유치원 정문에서 지성이를 기다렸다. 지성이는 나오자마자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더니,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부추겼다. 평소에 유치원이 끝나면 아빠랑은 유치원 앞 공원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노는 아이였는데 이상했다. 유치원과 맞닿은 성당 쪽으로 올라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지성이에게 물었다.

“지성아, 오늘은 공원에서 안 놀고 싶어?”

“응, 아빠 오면 공원에 갈 거야.”

시무룩한 지성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눈은 공원으로 향했다. 작년에 같은 반이어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노는 모습이 보였다. 지성이가 그 친구를 보는 것 같았다.

지성이가 6살이 되면서 반이 새롭게 바뀌었고, 친구 관계에도 지각 변동이 생긴 게 분명했다. 지성이는 같이 놀고 싶은데, 선뜻 다가서지 못해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새 친구가 생긴 그 친구는 지성이에게 “너랑 놀고 싶지 않다”는 말도 한 것 같았다. 지성이는 상처를 받은 듯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교우 관계가 덜커덕거릴 때 친구가 기쁨이 된 날도 있었지만, 상처가 되었던 날도 있었다. 나의 상처와 지성이의 상처가 오버랩이 됐다. 자식이 받았을 상처가 더 아리게 다가왔다.

아이스크림을 거의 다 먹은 지성이 손을 잡고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다 불러 모아서 물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할 사람 손 들어!”

지성이만 빼고 모두 손을 들었다. 내가 술래가 되어 나무 기둥에 얼굴을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 고개를 뒤로 돌릴 때마다 아이들이 웃음을 참고, 안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아이, 이가 빠진 아이, 웃는 모습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다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있는데, 지성이가 나무 뒤에 숨어서 깔깔거리며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다. 시무룩했던 얼굴은 환해졌다.

“모든 걸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아이는 자기 세상과 관계 안에서 지지고 볶고 갈등하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울 줄 안다. 아이는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엄연한 타인이다.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누군가 바라봐주는 단 한 사람이 있을 때 형성된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바라봐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단 한 사람만 그 순간 곁에서 아무 판단 없이 바라봐주면 된다.”(토마스 머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