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신자들 위한 ‘에파타준본당’ 성전 건립

(가톨릭평화신문)
 
▲ 서울대교구 첫 청각장애인 성당인 ‘에파타준본당’ 새 성전 조감도.

 

 

 
▲ 에파타준본당 주임 박민서 신부가 수많은 후원자들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이 건립됐다.

서울대교구 에파타준본당(주임 박민서 신부)은 25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 781-3 현지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새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한국 교회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은 2011년 건립된 인천교구 청언본당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로써 서울대교구는 청각장애인 사목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대지면적 892㎡, 연면적 약 2600㎡에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인 새 성전은 지하 2층 기계식 주차장(24대 수용), 지하 1층 다목적 홀, 1층 만남의 방과 카페, 2층 사제 집무실과 사무실 및 교리실, 3층 대성전(350석 규모)과 소성전, 성체조배실, 4층 성가대석과 작은 피정의 집, 5~6층 본당 사제관 및 손님 사제관 등을 갖췄다. 설계는 (주)무한종합건축사사무소가, 시공은 다산건설엔지니어링(주)가 맡았다.

특히 대성전은 청각장애인 신자들이 사제와 수화 통역자가 잘 보이도록 좌석이 뒤로 갈수록 기울기가 높아지는 경사식 구조로 지어졌다. 아울러 제대 벽면 십자가 아래에도 대형 LED 전광판을 설치해 신자들이 전례의 모든 흐름을 자막과 방송으로 볼 수 있도록 편의를 더했다. 성당 내 작은 피정의 집은 해외와 전국에서 피정과 강의를 듣고자 찾아오는 신자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숙식 공간이다.

성전 외벽은 예수님의 다섯 상처인 오상(五傷)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빛나며, 성전 입구에는 귀먹고 말 더듬던 이를 “에파타!”(열려라) 하고 치유하신 예수님의 부조가 신자들을 반긴다. 성전 입구 외벽에 주임 박민서 신부가 붓으로 직접 쓴 요한복음 6장 말씀 600자가 새겨진 것도 특징이다.

새 성전 건립은 청각장애인 신자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에파타준본당의 모체인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는 1957년 서울 돈암동에서 시작한 이후 20년 이상 수유동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련원 건물에서 ‘셋방살이 신앙생활’을 해왔다. 신자들은 100여 명을 겨우 수용하는 작은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고, 성경공부, 단체활동, 다과모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공간도 매우 부족했다.

이에 2011년부터 두 팔 걷고 나선 박민서 신부는 꼬박 8년간 전국 150여 곳 성당을 다니며 성전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힘썼다. 신자들도 자선 바자와 음악회 때마다 함께 도왔고, 성전 건립을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왔다.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는 설립 60주년이던 2017년 준본당으로 승격, 이듬해 에파타준본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일반 본당과 달리 속인주의(屬人主義) 공동체인 에파타준본당 신자 수는 500여 명. 청각장애인 신자들은 새 성전에서 더욱 기쁜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주임 박민서 신부 인터뷰



“장애라는 십자가 통해 더 큰 기쁨 얻도록 사목할 것”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그토록 성전 건립을 염원하던 본당 신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더 가슴이 뜁니다. 에파타준본당 건립을 위해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사제, 신자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새 성전으로 이사 준비에 한창인 8일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 수녀원에서 만난 에파타준본당 주임 박민서 신부는 “에파타준본당은 전국의 사제와 신자 여러분이 함께 만든 성전”이라며 “무엇보다 신자들이 더욱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고 전했다.

박 신부는 2007년 부임 후 청각장애인 신앙생활 함양과 성전 건립 기금 마련이란 ‘두 가지 사목’을 동시에 해왔다. 각 본당에 공문을 보내고, 방문 미사를 하는 긴 시간 동안 어느새 수만 명이 든든한 후원자가 돼줬다. 처음엔 ‘청각장애 사제가 어떻게 기금을 마련하겠느냐’는 주변 우려도 들려왔지만, 박 신부는 도리어 이를 청각장애인들의 녹록지 않은 신앙생활을 전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수많은 후원자 가운데 어려운 형편 중에도 1억 원을 기부해주신 일산의 70대 어르신 부부가 계십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신데다 지체장애가 있는 할아버지는 가판대 일로,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생활비도 아끼며 모은 거금을 저희에게 봉헌해주셨죠. 저희 신자들은 힘을 보태주신 여러분을 위해 매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박 신부는 에파타준본당을 청각장애인 신자들을 위한 ‘영적인 오아시스’로 가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신부는 “신자분들 대부분 형편이 좋지 않지만 함께 고민과 담소를 나누고 하느님과 만나는 성당 생활을 유일한 삶의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며 “새 성당이 청각장애인과 건청인 신자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청각장애인들은 모두 ‘작은 십자가’를 지고 사는 분들입니다. 그 고통을 하느님, 교우들과 나누는 것을 크나큰 기쁨으로 여기고 사십니다. 이분들이 십자가를 통해 더 큰 기쁨을 얻도록 본당 사목에 더욱 전념하고자 합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청각장애인분들의 신앙생활을 위해선 앞으로도 여러분의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언제든 에파타성당을 방문해주세요. 성당 문은 모든 분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