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침묵] 조르주 르메트르의 하늘

(가톨릭평화신문)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이를 처음 입증한 사람은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었다. 1929년에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은하까지의 거리와 후퇴 속도를 규정한 이 관계식을 ‘허블의 법칙’이라 부른다. 고교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현대 우주론의 뼈대를 이룬다.

지난해 10월 국제천문연맹은 이 법칙의 명칭을 변경했다.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바꿔 부르도록 권고했다. 우주 팽창에 관한 르메트르의 선구적 연구를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조르주 르메트르, 그는 벨기에의 예수회 사제였다. 아인슈타인보다 열댓 살 아래였지만 동시대에 활동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풀어서 처음으로 우주의 팽창을 제시했다. 이 논문의 발표가 1927년이니 허블의 관측보다 2년이 앞선다.

팽창우주는 필연적으로 우주의 시작을 암시한다. 팽창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아주 작은 초기의 모습과 만나지 않을까. 르메트르는 그 태초의 씨앗을 ‘원시 원자’로 불렀다. 지금의 우주는 이 원시 원자가 팽창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정설로 굳어진 빅뱅우주론의 모태가 된다. 르메트르는 빅뱅이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빅뱅은 언뜻 창세기의 천지 창조를 연상시킨다. 가톨릭교회는 호의적 반응을 내놓았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1년 교황청 과학원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과학은 ‘빛이 생겨라’ 했던 태초의 순간을 증언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황청 과학원은 1936년 비오 11세 교황 때 새롭게 재편됐다. 해마다 학술회의를 열어 과학 발전을 조명하고 연례보고서를 제출한다. 르메트르는 창립 회원이었다가 1960년부터는 의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자신이 주창한 이론을 환영한 교황의 과감한 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우선 당대의 언론은 교황청의 놀라운 변화로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매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학 이론으로 신앙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옳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르메트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과학과 신학을 억지로 연결하면 과학 발전은 물론 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오늘날 교회는 과학을 경계하지도 배척하지도 않는다. “교회는 과학의 놀라운 진보를 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 정신에 주신 크나큰 잠재력을 깨닫게 되어 기쁘고 또 즐거워합니다.”(「복음의 기쁨」 243)

신앙과 과학은 한때 서로 대립한 적도 있었으나 이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과학은 우주의 신비에 다가서려는 인간 지성의 노력이다. 신앙은 대자연 앞에 헐벗은 영혼이 던지는 궁극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교회는 성경을 과학교과서로 여기지 않으며 그 역할을 온전히 과학에 넘겼다.

르메트르는 1960년에 몬시뇰이 됐고 1966년에 선종했다. 최고의 과학자이자 성직자로서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데 공헌했다. 특히 과학이론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종교가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과학이론은 언제든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지만, 교회는 영원의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달 앞에서 이따금 현기증을 느낄 때 르메트르의 말은 여전히 음미할 만하다. “교회가 과학을 필요로 합니까. 아닙니다. 십자가와 복음만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