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주의 화풍과 한국 전통 색채 융합, 그림으로 성경 말씀과 복음 정신 전파

(가톨릭평화신문)
▲ 앙드레 부통 신부가 1960년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부산 초장성당의 벽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 앙드레 부통 신부는 서양의 야수주의 화풍과 한국의 전통 색채가 융합된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사진은 부통 신부가 그린 축복예식서 표지.

▲ 상주 서문동성당의 벽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1960~70년대 100여 점에 달하는 벽화 제작

앙드레 부통 신부는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간 한국에 체류하며 한국 가톨릭교회에 서양화와 한국적인 표현을 적절히 융화시킨 독특한 화풍을 소개하여 1960~70년대 한국 가톨릭교회 미술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제한된 재료와 작업 여건에도 불구하고 앙드레 부통 신부는 예술을 통한 신앙 전파의 열의로 국내에 100여 점에 달하는 벽화를 제작했다. 부통 신부는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에 ‘FRAB’, ‘부’, ‘부신부’와 같이 여러 형태의 서명과 함께 제작 년, 월, 일을 남겼다.

그의 판화 작품에는 서명과 함께 그의 한국 이름으로 보이는 ‘부보경(夫普敬, 夫普景)’이 새겨진 낙관(落款)이 찍혀 있다. 부통 신부의 판화 작품은 1969년 3월 16일, 3월 23일자 가톨릭시보 제4면에 실린 ‘사순절 전례(四旬節 典禮) 부활의 길’의 삽화로 실린 바 있는데 기사에 ‘글···白플라치도, 그림···夫普敬’라 쓰여 있어 부통 신부의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서명들이 부통 신부 작품의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약 10여 년간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앙드레 부통 신부는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1970년대 한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본원인 프랑스 위스크의 생 폴 수도원으로 복귀했다.



프랑스 귀환 후의 활동 : 예술가에서 교육자로


한국을 거쳐 일본에 체류 중이던 앙드레 부통 신부는 건강 악화로 1977년 9월 일본에서 프랑스 위스크 수도원으로 복귀하여 1980년 3월 선종할 때까지 자신의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프랑스로 돌아온 부통 신부는 건강상의 문제로 대규모 벽화 작업은 실행하지 못했으며 세라믹 작품을 비롯한 소품을 주로 제작하였다.

당시 그는 성인 시리즈를 주제로 한 세라믹 패널 작품을 제작했는데, 한국과 일본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인물상들이 담긴 작품들이 현재 위스크 수도원에 남아있다. 또한, 이 시기에 제작한 세라믹 작품 중에는 그의 한국어 이름 약자인 ‘부’로 서명이 되어 있는 작품이 남아 있어 한국 체류 시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귀환 이후 부통 신부는 작품 제작보다는 교육 관련 일에 주력하였다. 한국 체류 시기에 쓴 편지에서 그는 “지금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프랑스어로 강의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여 년이라는 긴 한국 체류 기간 그는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소통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성경 말씀에 대해 보다 다양한 소통을 이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 보낸 3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부통 신부는 주로 위스크 수도원의 수련기 수사들을 위한 성경 연구회와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앙드레 부통 신부는 스스로도 늘 이야기했듯이 예술가이기에 앞서 신부, 선교사, 교육자였으며 성경 말씀과 그리스도교 정신을 교육하고 알리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소임임을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교육과 선교를 위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소통의 수단이었다.



지방 공소 중심으로 벽화 20여 점 남아 있어

앙드레 부통 신부가 국내에 남긴 벽화의 수는 현재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지방 공소를 중심으로 남아 있는 20여 점의 벽화에서 서양의 야수주의 화풍과 한국의 전통 색채가 융합된 그의 독특한 화풍을 볼 수 있다. 그동안 부통 신부의 작품을 재평가하고 현재 남아 있는 작품에 대한 보존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현재 대전교구 대흥동 주교좌 성당에 있다가 소실된 부통 신부의 벽화들을 복원하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대구대교구, 안동교구에 남아 있는 부통 신부의 작품들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도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앙드레 부통 신부에 대한 연구는 필자에게 옛 자료를 뒤지고 기록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1960~70년대 가톨릭시보에 게재됐던 부통 신부 관련 기사 목록과 필자의 연구 논문을 정리하며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본 졸고가 부통 신부가 펼쳤던 예술 선교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969년 3월 16일, 1969년 3월 23일자 제4면 ‘사순절 전례(四旬節 典禮) 부활의 길’ 판화 삽화

▲1972년 4월 2일 제1면, ‘영광의 그리스도’, 부 안드레아 신부 그림, 대전 성남동성당 벽화

▲1972년 4월 9일, 제4면 ‘그림으로 복음전파, 왜관 베네딕또수도원 부신부’(삽화: 삼위일체, 화령본당 하동공소 벽화, 1967년 제작)

▲1972년 12월 25일, 제4면, ‘성탄’ 삽화

▲정수경, ‘붓을 통한 신앙 전파 : 앙드레 부통 신부(Andr Bouton OSB : 1914~1980)의 예술 선교’, 「교회사연구」 38, 2012, pp.105~141.


▲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다음 글부터는 한국 가톨릭 여성 원로작가에 대한 소개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첫 작가는 백남순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