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사회교리] (45)정의의 의무

(가톨릭평화신문)
 
▲ 최원오 교수

 

 


“남의 것을 탐내지 않더라도 자기 것을 베풀지 않는 이들은 특별히 권고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소유한 것 가운데 땅은 모든 이의 공유물이며 음식도 모든 이를 위해 공동의 몫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힘써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죄 없다고 여기는 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공동의 선물을 자기 개인의 것이라 우깁니다. 그들은 받은 것을 나누어주지도 않고 이웃이 죽어가도 활기차게 돌아다닙니다. 죽어가는 가난한 이들의 생필품을 몰래 감출 때마다 매일같이 그들을 살해하는 셈입니다. 궁핍한 이들에게 필수품을 나누어줄 때, 우리는 우리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그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행위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대 그레고리우스, 「사목 규칙」 21)



서방의 마지막 교부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540~604년)은 격동기에 교회 개혁에 앞장선 교부이며, 서방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다. 32세에 로마 집정관이 된 그는 얼마 뒤 스스로 관직을 내려놓고 수도승이 되었다가 50세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교황인 그는 참회와 자선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구제했다. 전쟁의 위협 속에서 평화의 중재자가 되었고, 박해받는 유다인의 권리를 지켜 주었다. 원주민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라는 선교 지침을 내렸으며, 전례 개혁을 추진하여 훗날 그레고리오 성가라 불리는 성음악의 토대를 놓았다. 특히 성직자를 위한 사목 지침서를 펴냈으니, 대 그레고리우스의 「사목 규칙」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사제직」, 암브로시우스의 「성직자의 의무」에 비길만하다.

여기 인용한 대목에서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은 재화의 공공성과 토지 정의를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스레 죽어가는데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세상 모든 재화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아들으라고 호소한다. 땅은 만인의 공동 재산이며 음식을 비롯한 생필품도 공동의 몫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헐벗은 이에게 입히는 자비의 옷은 나에게 입히는 정의의 옷

정의란 무엇인가?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suum cuique) 나누어 주는 것이라는 이 말마디는 정의(正義)에 관한 고전적 정의(定義)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을 나누어주는 것은 칭송받을 선행이 아니라 이미 되돌려 주었어야 할 그들의 몫을 뒤늦게 갚는 행위라고 한다. 선행의 미덕이 아니라 정의의 부채 청산이라는 것이다.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며, 여분의 것을 돌려주는 것은 자선 행위이기 이전에 정의의 행위라는 주장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대 바실리우스,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히면 자신에게 정의의 옷을 입히는 것”(암브로시우스 「성직자의 의무」 1,11,39)이라는 교부 전통을 현대 가톨릭교회도 이렇게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자선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에게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베네딕토 16세, 「진리 안의 사랑」 6)

지난 2016년 자비의 특별 희년을 폐막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밝힌 대로, 진정한 자비는 반드시 정의를 위한 투신으로 이어져야 한다.(「자비와 비참」 19)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