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89)면역력을 높여주는 ‘발효영성’

(가톨릭평화신문)
▲ 누구나 고난과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시련도 행복한 감정으로 피어나는 ''발효영성''이 필요핟. CNS 자료사진





“기계가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아니에요. 정성으로 돌봐야 해요.”

“맞아요. 너무 짠 것도, 수분이 많은 것도 조절해서 넣어야 하고요.”

“그리고 기다려줘야 해요. 분해해서 발효되는 시간이 있으니 그냥 아무 때나 마구 넣으면 안 됩니다.”



요즘 ‘미생물이 아파서 몸살을 앓고 있다’며 수녀들이 분분해서 하는 말이다. 얼마 전에 수녀원은 친환경차원에서 미생물음식처리기를 구입했다. 참으로 신기한 기계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넘치는 음식물 쓰레기는 처리하기가 불편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부패해 악취가 났다. 그러면 독성과 발암물질로 환경에도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미생물음식처리 기계가 고마웠다. 음식물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 발효되고 거기에서 나온 향기로운 퇴비를 밭이나 화분에 뿌려주면 또 다른 생명이 되어준다.

하지만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미생물을 위한 적정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너무 맵거나 짜면 발효하는 데 시간이 더디거나 좋은 미생물이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온도가 너무 높거나 습해서도 안 된다. 발효되는 데 시간도 필요하기에 아무 때나 음식물을 넣어서도 안 된다. 다시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음식물 변질 차원에서는 부패나 발효나 모두 같다. 그러나 부패는 썩어 악취가 나고 발효는 좋은 효소를 분비한다. 부패는 유해한 균이 되어 식중독이나 죽음으로 몰아가고, 발효는 유해균과 싸우는 아군이 되어 면역력을 높여준다. 그래서 발효에 적합한 환경이 유지되도록 깨어 돌봐야 한다.

우리 수녀원에는 상한 음식을 먹어도 배탈 한 번 나지 않는 수녀가 있다. 그는 한국전쟁을 겪고 가난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절대로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는다. 심지어 부패한 음식까지 먹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상한 음식을 섭취하고도 식중독이나 장염이나 그 흔한 배탈도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먹었다면 즉시 응급실로 실려 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균이나 바이러스 자체가 병에 걸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균에 저항하는 면역력이다. 노 수녀의 시련과 가난은 오히려 유해균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높은 면역력을 지닌 튼튼한 위장을 유지하게 해준 셈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똑같이 고통스러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와서는 어떤 이는 오히려 더 적극적인 유연함으로 시련과 고난을 헤쳐나간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두려움과 불안감에 작은 걸림돌에도 쉽게 넘어지고 좌절한다. 누구에게는 고통이 삶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준다. 또 누구에게는 상처가 돼 내면의 힘을 소진시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한다.

엄청난 죽음의 위기를 딛고 일어선 한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전 참 행복해요. 행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문턱까지 내려가 봤기에 행복합니다.” 고통스러운 죽음체험이 행복으로 변화되어 피어나는 삶, 발효영성이다.



성찰하기

1. 고난과 시련, 고통과 죽음이 행복한 감정으로 피어나는 ‘발효영성’을 살아요.

2.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않는, 너무 비굴하지도 너무 거만하지도 않는 마음의 적정온도를 맞춰요.

3. 너무 짜지도 너무 맵지도 않은 심심하고 밋밋한 일상의 행복을 즐겨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