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인생 다 담아진 그림 혼번 봥 갑서”

(가톨릭평화신문)
▲ 행복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평생 그림 한 번 그려본 적 없는 제주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붓을 들었다. 흰 캔버스에는 못다 이룬 학창시절의 꿈, 어렵게 돈을 모아 마련한 집, 여행의 추억이 넘실댄다.

제주교구 동광본당(주임 고병수 신부)과 사단법인 사람과사람들이 16~18일 3일간 제주도청 2청사 로비에서 ‘행복 전시회’를 열었다. 행복 전시회 초대장에는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녀 손자 친구들아! 내 장례식에는 오지 않아도 좋다. 전시회에서 얼굴 좀 보자!’라고 썼다.

본당 신자와 지역민 등 어르신 8명은 사단법인 사람과사람들이 마련한 행복 그리기 작업에 동참했다. 지난 9월 7일부터 9주 동안 어르신들은 성당에 모여 살아온 날들의 기억을 되새기며 행복했던 시절, 장면을 꺼내 그림으로 옮겼다. 작품은 모두 19점으로 ‘결혼 시험’ ‘인생은 웃으며’ ‘살기 좋은 우리 동네’ ‘자화상’ ‘내 사랑 큰딸’ 등이 걸렸다. 미술 전문가와 자녀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 16일 개막식에서는 작품을 설명하며, 가족과 친척, 손자녀들에게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관람객들은 부조금을 준비했고, 행사를 주최한 사단법인 사람과사람들은 답례품을 선물했다.

‘쉐프 김양희’ ‘동광성당’ 등 세 작품을 출품한 김양희 할머니는 “요리를 배워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꿈이었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배우자 문종수 할아버지”라고 부부 금실을 자랑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전시 기획을 맡은 강홍림씨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일생의 중요했던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셨는데 슬프고 화났던 일이 많은 분이 도중에 포기하셔서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강씨는 이어 “미술 작업을 통해 떠날 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사람과사람들은 문화를 통해 제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올해 설립됐다. ‘할머니 할아버지 행복 그리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