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사회교리] (46·끝) 예수님의 사회교리

(가톨릭평화신문)
 
▲ 최원오 교수

 

 


“엄밀하게 보자면 사회교리는 여러 교황이나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회교리는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곧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회교리 그 장… 제가 여러분 모두에게 교회의 사회교리를 확실히 익히라고 당부하는 것은 단지 편안히 앉아서 사회교리에 관해 토론하는 모습만을 바라서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제 꿈은 더 큽니다. 저는 백만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에게 다가가는 ‘두 발로 움직이는 사회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치며, 그분과 함께 변두리의 더러운 곳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정치에 뛰어들어 정의와 인간 존엄성을 위해,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해 싸우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교회입니다. 교회가 변하고 살아 있는 교회가 되도록 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비명에서, 환난을 겪는 사람들의 탄식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의 신음에서 사명을 찾기 때문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DOCAT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톨릭 사회교리서」 머리말)



그 자체로 사회적인 그리스도교 교리

“사회사목은 ‘철로 만든 철’과 같은 동의어 반복(tautology)이다. 모든 사목 활동은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민 신부의 탁월한 통찰이다.

그렇다면 사회교리는 어떤가? 사회교리는 수많은 장엄 교리들 가운데 갓 태어난 막둥이 교의나 거대한 신학 체계 속에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신학 이론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교리는 그 자체로 사회적이다. 복음은 세상 한가운데서 당신 백성을 목숨 바쳐 돌보시는 하느님 사랑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사회교리는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성찰하고 해석하는 복음이며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의 원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회교리 그 자체”라는 놀라운 표현도 마다치 않는다. 가톨릭 사회교리(catholic social teaching)를 현대 교황과 교회의 공식 문헌 몇 편으로 한정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교회는 세상을 위한 존재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김수환 추기경은 첫 사목 서한에서 “교회는 세상을 위한 존재”라고 선언했다. 친일과 기계적 정교분리에 흐릿해진 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되새기며 교회 쇄신의 든든한 머릿돌을 놓은 역사적 선언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묶이고 억눌린 이들을 해방하는 일을 당신 소명으로 삼으신 주님의 삶과 가르침이 사회교리의 원형이며,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주님을 따라 사랑과 연대, 정의와 평화를 가르치고 실천한 수많은 교부와 성인, 이름 없는 신자들의 헌신적 삶이 사회교리의 실천적 본보기다.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주님의 복음과 교부들의 거룩한 전통은 우리 교회의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신앙 원천이다. 한 해 동안 소개한 교부들의 사회교리는 교부들이 물려준 거대한 도서관에서 더듬더듬 찾아낸 토막글에 지나지 않는다. 교부들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고 얼마나 가난한 교회와 정의로운 사회를 열망했으며 또 얼마나 스스로 가난하게 살았는지 서툰 솜씨로나마 증언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



※그동안 ‘교부들의 사회교리’를 연재해 주신 최원오 교수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또 다른 기회에 또 다른 형식으로 만나서 교부들의 가르침을 익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