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 위한 하늘나라 옷, 기도하며 한땀한땀 지어

(가톨릭평화신문)



지난 2월 7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청년 노동자 김용균씨의 빈소에 수의 한 벌이 전달됐다. 예수수도회 이애령 수녀는 고인의 모친 김미숙씨에게 정중히 수의를 전달하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깊은 위로를 전했다.<사진> 누군가는 죽은 이를 위한 옷 한 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수의에는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가족의 아픔을 함께하겠다는 수도자들의 자비심이 담겨 있었다. 위령 성월의 끝자락,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수의를 만드는 예수수도회(한국관구장 장영선 수녀) 남촌지원(전주교구 익산공소)을 찾았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 강희숙 수녀가 예수수도회 남촌지원에서 만든 수의를 펼쳐 보이고 있다. 수도회는 ‘수의’를 매개로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동반자가 되어준다.


▲ 전주교구 익산공소.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을 함께하다

버려진 축사와 반쯤 철거된 주택들이 늘어선 전북 익산시 왕궁면 공소길. 익산공소 가는 길은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바람에 뒹구는 낙엽 소리만 스산하다. 예수수도회 남촌지원 책임을 맡은 강희숙(아그넬라) 수녀는 “이 지역은 과거 소록도에서 치료를 마친 한센인들이 육지에 나와 정착해 돼지나 닭을 키우던 마을”이라며 “지금은 모두 고령으로 대부분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수수도회가 이곳에서 사도직을 시작한 건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자들은 오랜 세월 한센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다. 공소가 신자들의 웃음으로 가득 찬 시절도, 부설 유치원이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활기 넘치던 시절도 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지금은 교중 미사 참여자가 15~20여 명에 불과한 작은 공동체로 변했다.

수의를 만드는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창에 붙은 포도와 하트 모양 스티커가 이곳이 유치원 건물이었음을 말해준다. 7명의 수도자가 남촌지원에서 생활하며 수의사도직과 공소사목, 농사일과 이주 여성들을 돕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수의 사도직, ‘하늘 길벗’

‘하늘 길벗’(하늘 가는 길! 벗 라자로와 함께)이라는 이름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에서 비롯되었다. 예수수도회는 가난한 라자로가 고독한 죽음을 맞지 않도록 돌보아주고, 부자가 지상에서 라자로를 위해 사랑의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역할을 수도자들의 몫으로 식별하고 2018년 봄에 수의 사도직을 시작하였다. 세상에서 밀려나 가난하고 외롭게 죽음을 맞는 이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 이들을 위한 수의를 만들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동행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환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천상의 수의

수의 제작 작업실에 햇살이 가득하다.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인 재봉틀과 가위, 자 등 재단 도구들이 수도자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수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천 값은 30여만 원. 유구인견인 좋은 재료를 사용해 기도와 정성으로 수의를 짓는다.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다. 저고리, 바지, 치마(두루마기), 악수, 버선, 습신, 천금, 지요, 베개 등 남녀 모두 16개의 품목에 이른다.

수의를 만들기 위해 수도자 두 명이 전통 한복 학원에 다녔다. 한복을 입을 일이 없는 수도자들이 한복 제작 학원을 찾았으니 학원 측도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강 수녀는 장례지도사 공부도 했다. 그때 수의 모양을 어떻게 만들어야 더 좋을까 궁리했던 고민을 수의 제작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작업대에 펼쳐진 수의는 햇살에 반사돼 은은한 빛을 내어 보는 이의 마음에 위안을 준다.

수의는 살아 있는 이들을 치유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한국전쟁 때 고아가 돼 사회적으로 수많은 상처를 받고 자란 이에게 수의가 전해진 적이 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부모를 찾았지만, 그들은 자식을 거부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미움만 남았다. 태어난 것 자체를 원망했다. 수도자들이 익산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그를 찾았을 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강 수녀는 “말로 건네는 위로가 상대방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겠냐”며 “기도해 드리고 손잡아 드리고 안아 드리며 위로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고 기쁜 마음으로 수의를 받았다. 강 수녀는 “그분의 변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수의를 함께 짓는 사람들

수도자들이 만든 수의가 소문나자 “수의를 사고 싶다”는 연락도 적지 않게 온다. 그럴 때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중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 수의는 수도자들이 기도하면서 만들고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영혼들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 길벗’ 사도직은 수의가 필요한 상처받은 이들과 수도자를 잇고, 다시 상처받은 이들과 후원자들을 잇는 다리인 셈이다. 매달 소액을 후원하는 이들과 수의값을 기증하는 이들을 통해 이 사도직을 이어가고 있다. 기증자에게는 “어느 가정에 어떤 사연을 가진 분을 위해 수의를 전할 것”이라 알리고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예수수도회의 창립자인 가경자 메리 워드(1585~1645)는 그 시대의 가장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시며, 필요한 것을 항상 채워주신다’는 것을 늘 체험했다. 예수수도회 수도자들은 창립자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믿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설명을 마친 강 수녀가 다시 재봉틀을 돌린다. 세상에 상처받은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재봉틀을 부지런히 돌려야 수많은 상처를 위로할 수 있다. 재봉틀 소리가 죽은 이와 산 이를 위로하는 연도 소리처럼 들리는 위령 성월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하늘 길벗’ 문의 : 010-4296-1964, 강희숙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