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주님의 부르심(조한철, 안토니오, 배우)

(가톨릭평화신문)



저는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몇 개월씩 냉담을 했습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시작된 냉담이 결국 고해성사에 대한 부담으로 지속되었습니다. 저에게 고해성사는 너무 큰 숙제였습니다. 어쩌면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몇 년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낯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일찍 서두른 탓에 시간이 많이 남아 느릿느릿 동네를 구경하며 걷는데, 제 눈앞에 거짓말처럼 성당이 떡하니 나타났습니다. 가슴 한구석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신자가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도망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홀린 듯 성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들어서자마자 고해소의 불빛이 보였고 저는 그 불빛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다시 성당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그동안의 냉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주변 분들이 수군거리시더니 저를 고해소 맨 앞에 세워주셨습니다. 미사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아마 저에게 무슨 큰일이 있나 보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밀리듯 고해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무릎을 꿇고 한참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랫동안 냉담해온 것에 대한 죄를 고백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뭐라고 하실까?’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아찔했습니다. ‘어떤 보속을 주실까?’ 빨리 고해소를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죄 안 짓고 살 수 있어요? 나도 죄짓고 사는데? 나도 죄짓고 고해성사 드리고, 또 죄짓고 고해성사 드리고 그러면서 살아요. 죄짓고 성당에 와서 기도도 하고 고해성사도 드리고 그러면 되는 거지, 뭐. 주모경 3번 바치세요.”

황당했습니다. 신부님의 말투가 너무나 쿨하셨습니다. 마치 친한 친구가 ‘자식아, 괜찮아! 그게 뭐라고 울고 있냐?’ 하고는 머리통을 한 대 툭 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눈물이 뚝 그쳤습니다. 더구나 주모경 3번이라니…. 몇십 년 신앙생활을 하며 받았던 보속 중에 가장 가벼운 보속이었습니다. 아무튼, 어리둥절한 채로 미사에 참여하고 보속으로 주모경을 3번 바친 뒤 성당을 나섰고, 뒤늦게 친구에게 달려갔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습니다. 하필 친구와의 약속 시각이 많이 남아 있었고, 제가 어슬렁거리던 곳에 성당이 있었고, 그 순간이 미사 시간 직전이었고, 하필 마음씨 좋은 분들께서 저를 고해소에 밀어 넣어 주셨고, 또 처음 뵙는 신부님은 어쩜 그렇게 쿨한 분이셨는지…. 이 모든 일이 십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년간 쌓이고 쌓인 나의 무거운 죄책감이 한없이 가볍고 산뜻해졌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주님이 날 부르셨구나….’

그날 이후 저에겐 ‘고해성사 공포증’이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