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신앙체험수기] 심사평 - 신달자 시인

(가톨릭평화신문)
▲ 신달자 시인



원고를 읽기 전 십자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다. 너무 지나친 불행을 읽어야 할 힘을 달라고 애원하면서…. 그러나 이번 원고들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오히려 읽는 힘보다는 귀를 마음을 잘 열고 배우는 힘이 필요한 원고들이 많았다. 신앙수기가 탄탄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모든 이의 원고가 진지하고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의문과 감사로 가득했다고 볼 수 있었다. 심사위원(김영국 신부님, 이도행 신부님)들도 독후감이 같았다고 함께 마음을 모았다.

신앙수기는 연약하고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마음이 무거운 현실에 놓였을 때 주님의 힘으로 어떻게 바르게 가느냐 하는 은총이 경험 극복의 정신 등을 각자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가장 큰 핵심은 ‘주님 앞에 나의 자세’를 명백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일 테다. 굳이 더 욕심을 낸다면 글이니까 문장도 좀 더 감동이 있으면 하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바람이다.

이번 대상은 안윤자(베르나데트)씨의 ‘귀향’으로 정했다. 정직하고 진지하다. 때론 인간에게 신앙은 짐이 되기도 한다. 내려놓고 싶은 거추장스러운 덤 같기도 한 것이다. 그러한 갈등의 주제를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무엇보다 마음의 화장을 다 지운 모습으로 무릎을 꿇은 하느님의 딸을 보는 느낌이다. 아직까지 방황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베르나데트씨의 모습은 오히려 충직하게 주님 앞으로 다가서는 모습으로 읽히게 한 것이 큰 장점이었다.

특별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가능한 일에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이정희 데레사씨의 ‘야훼이레 하느님을 체험하며’로 정했다. 삶은 잔인하게 다가왔고 그 사나운 삶을 고개 숙이며 간절하게 신앙심으로 버틴 한 할머니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손주 이삭이 교통사고가 나면서 모든 희망은 허리가 꺾인다. 결과는 더 잔인하여 손주는 눈이 멀고 캄캄한 세월을 보낸 것은 모든 가족들이었다. 어둠에 불을 켜 준 것은 오직 믿음이었다. 결과는 부부가 쌍둥이를 낳고 새로운 희망을 이루며 마치 제대 앞에 두 개가 촛불을 켜듯 신앙의 해가 떠오르는 이야기지만 가족들이 마음을 여는 모습은 신앙인 누구라도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우수상을 받으신 분은 수녀님이시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원진숙 마르가리타 수녀님의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나…’도 감격적이다. 신앙의 핵심은 하느님을 무조건 따르며 자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주시는 것이리라. 이른 나이에 암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것이 신앙인이다. 그게 가능한가?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몇백 번 하느님께 대들어도 묵묵히 하늘에도 친구가 먼저 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지는 어디쯤일까? 위급해서 유방암으로 냉소적인 태도의 조엘 옆에서 조금씩 신앙의 살과 뼈를 말씀으로 행동으로 녹여 공포의 옆을 지키시는 경험을 그야말로 낮은 음성으로 기록한 이 기록은 조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할 작은 성경이라고 생각했다. “수채화 열두 장을 그릴 시간을 달라고 기도했어요. 꽃을 그리겠어요”라고 밝게 웃는 조엘을 바라보는 수녀님. 가벼워지는 것이 마음뿐이겠는가? 신앙이 자세가 흔들릴 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다.

가작 두 편은 소통불통인 남편과 살아내는 신앙인의 의지가 드디어 화합을 이루는 이야기를 쓴 김영주 트리피나씨와 어려움 속에도 나를 던지며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굳건히 지키는 글을 쓴 최점순 헬레나씨에게 돌아갔다.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꼭 이 글에 첨부하고 싶은 것은 김인숙 마리아 막달레나씨의 ‘은총의 사다리’다. 등외가 되었지만, 너무 아쉬웠다. 동생의 휠체어를 끌며 자기 마음까지 끌며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힘의 신앙인 김인숙씨에게 실망하지 않기를 기도로 응원한다. 앞으로 꼭 기회가 있을 것을 믿는다. 원고를 보내주신 모든 분께 진심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원고를 읽으며 많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