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절 특집] “진정한 반성 위해 역사 제대로 알아야”

(가톨릭평화신문)




“교회를 옹호하기보다는 객관적 역사 서술 제공이 일차적 목표였습니다. 반성을 진정으로 하려면,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는 알아야 할 게 아닙니까?”

8년 5개월에 걸친 유학 끝에 ‘신사 참배’를 주제로 한 박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고 1월 말 귀국한 한국외방선교회 유가별 신부<사진>는 “신사 참배 연구 논문은 많이 나와 있지만, 그간 연구는 국내 사료에만 의존해 연구가 이뤄져 왔다는 점, 또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신사 참배에 대한 일본 교회의 대응, 나아가 일본 교회와 한국 교회의 연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 끝으로 신사 참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청이 외교적으로, 교계적으로 기울인 노력을 살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고 말문을 뗐다.

유 신부는 따라서 “한국과 일본 교회, 바티칸과의 관계를 정확히 판단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한 객관적 역사 서술은 어렵다”며 “그 바탕 위에 역사적 반성과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사료는 그대로 두고 일본 교회의 사료들과 바티칸 사도문서고, 인류복음화성 문서고, 국무원 문서고 등 3개 문서고와 예수회 총원 로마 문서고, 파리외방전교회 문서고, 프랑스 외교부 문서고 등 6개 문서고에서 새롭게 발굴한 사료와 최근 비밀 해제된 문서와 서한, 보고서를 토대로 논문을 연구 집필했다고 전했다.

유 신부는 또 신사 참배 허용과 관련해 한국 교회의 역할은 당시 들러리 수준에 불과했다고 봤다. “물론 당시 한국 교회에서 신사 참배에 관한 논의를 많이 하기는 했지만, 교황청에서 신사 참배를 허용하는 데 있어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교회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유 신부는 “신사 참배 허용에 있어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지녔던 것은 일본 교회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유 신부는 당시 신사 참배가 허용된 데는 신학적인 논의 외에도 △지역 문화를 존중하려는 당시 교황청 분위기 △공산주의의 확산에 따른 교회에 대한 위협과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국가신도 정책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 교회 입장 △과열된 국가주의와 군국주의 흐름 속에서 신사 참배를 거부할 경우 교회에 가해질 박해가 임박한 상황에 대한 교황청의 우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 신부는 그러면서도 “당시 교황청의 신사 참배 허용은 시대적 상황도 있었고, 교계적이고 외교적인 노력의 귀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 참배를 제국주의 국가 입장에서 애국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으로만 해석한 교황청의 판단, 신사 참배 문제를 식민지의 민족 문제는 도외시한 채 허용한 한국 주교들과 주일 교황사절의 판단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오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