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3)첫영성체 교리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상)

(가톨릭평화신문)


데레사씨는 10여 년 전 부모님과 몇 차례 심하게 다투고 난 후 친정과 발을 끊고 살아왔다. 6학년, 5학년 연년생인 손자와 손녀가 그 나이 되도록 첫 영성체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친정 부모님이 크게 노하시며 당장 첫 영성체 교리를 시키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데레사씨는 이러한 부모의 태도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자신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신앙을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이 합리적인 종교관이라고 확신하였다.

데레사씨는 종교를 선택하고 믿음을 가지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로 보았다. 따라서 아무리 부모라 해도 종교의 자유를 아이로부터 빼앗을 권리는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조부모님은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종교 교육을 일찍부터 시켜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완고한 무신론자로 살아가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종교의 자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두 입장은 언뜻 갈등 관계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렇지 않다. 종교와 영성에 대해 조금만 이해를 하게 된다면 이런 문제로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특정 종교, 즉 가톨릭교회 안에서 교리교육만을 받아왔기 때문에 좀 더 큰 관점에서 종교와 영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과학적 이성주의 교육을 받은 자식들과의 대화에서는 좀 더 큰 차원에서의 종교와 영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데레사씨의 입장은 자녀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믿음과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은 헌법뿐 아니라 인간에게 보장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하지만 데레사씨 부모의 입장은 종교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데레사씨가 이해한 것처럼 자녀들에게 종교 예식을 통해 특정 교리를 세뇌시키자는 뜻은 적어도 근본적으로 아니다. 데레사씨의 부모들은 그러나 다른 신앙을 받아들이기 전에 가톨릭 신앙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에서 그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의도야 어떻든 간에 데레사씨의 부모 입장은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중요한 권리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즉 부모는 아이들의 영성 발달을 위한 영성적 양육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 선택의 자유보다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로서 모든 인간에게 예외가 없다.

아이의 생존과 신체적 발달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채워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요 역할이다. 이때 아이의 선택권은 온전히 부모에게 양도된다. 아이가 자신의 자유와 선택권이 일정 기간 부모에게 양도되는 경우는 비단 신체적 발달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신체적 성장만이 아닌 지성적, 정서적,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 성장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온전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성장 혹은 발달라인에서 우리가 종종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이의 영성 발달이다. 즉, 어린 시절 영성 발달라인에서 결핍을 가진 아이들은 훗날 개인적인 면에서는 물론 사회 공동체적인 면에서 문제를 체험하게 된다. 종교나 신앙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영성 발달을 성장시켜주는 중요한 삶의 과정이다.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영성적이며 초월적인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능은 지성, 정서, 그리고 신체적 발달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발달 과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아이들은 지성, 감성, 신체, 사회성, 도덕성, 초월성 등의 다차원적인 인간성을 발달시키며 청소년 시기에 절정을 맞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영성적 차원에서의 충분한 발달, 즉 영성적 감수성을 계발시킬 기회가 사라지면 이후에 그것을 만회하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여간 어렵지 않게 된다.

만일 이 사실을 데레사씨가 알고 있다면 자신의 부모가 말하는 내용을 좀 더 합리적이고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