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김 추기경과 법정스님의 미리 쓴 유서(정석, 예로니모,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가톨릭평화신문)





지난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11주년을 맞아 유서가 공개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깊이 현존하시는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등 모든 불우한 사람들 속에 저는 있지 못했습니다. 임종의 고통만이라도 이 모든 형제들을 위해 바칠 수 있기를 소망해 마지않습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손글씨 한 자 한 자에 그분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돌아가시기 전에 육체적 고통으로 많이 힘들어하셨다는데 그걸 평생 삶의 보속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떠오를 무렵 유서를 쓴 날짜에 눈길이 간다. 임종 직전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1971년 2월 21일 밤’에 썼으니 49세 한창 젊은 나이에 미리 쓴 유서다.

1951년에 사제품을 받고 1966년에는 마산교구 초대 주교로, 1968년에는 서울대교구 대주교로 임명된 뒤 1969년 47세에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으니 유서를 쓴 시기는 추기경 3년 차 때다. 한해 전에도 두 장의 유서를 썼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장기 부재 시 교구의 사목권 위임에 관한 내용과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의 일치와 쇄신을 당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왜 유서를 미리 썼을까? 자신의 신상에 위험이 있을 것을 예감해서였을까? 한국 교회를 이끌어갈 무거운 짐을 졌을 때,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걸어야 할 길을 내다보며 스스로 다짐하기 위함이었을까?

추기경의 미리 쓴 유서를 읽다 또 한 분의 미리 쓴 유서가 떠올랐다. 법정 스님의 유서다. 천주교와 불교의 존경받는 지도자였고, 세속 나이는 열 살 차이가 나지만 살가운 친구처럼 소통했던 두 분은 삶과 죽음에 공통점이 많다. 젊은 시절 미리 쓴 유서도 그중 하나다. 1971년 39세 때 법정 스님이 쓴 유서는 스님을 세상에 널리 알린 책 「무소유」에 ‘미리 쓰는 유서’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원고지 14매 분량의 유서의 내용 가운데 가슴에 박히는 이야기가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려 집에 오는 길에 장애인 엿장수에게 엿을 고르는 체하다가 슬쩍 빼돌린 일을 언급한 대목이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내가 살아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40년 가까운 삶에서 왜 스님은 엿장수에게 잘못했던 일을 가장 큰 죄로 고백하고 참회했을까? 추기경이 된 지 불과 3년도 안 되었을 때 왜 추기경은 가난한 사람들 속에 함께 있지 못한 죄를 가장 무거운 죄로 통찰하고 임종의 고통으로나마 보속하고자 했을까? 그분들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깊이 성찰하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완전해서 위대한 사람이 아닌, 불완전해서 더욱 사랑스러운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을 본다.

가난한 사람들 속에 살다 간 바보 추기경, 남은 책 몇 권을 신문 배달 소년에게 주고 무소유 삶을 마무리한 법정 스님. 두 분은 유서처럼 사셨다. 유서는 지나온 삶을 마감하고 남기는 글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고 남은 삶을 지향하는 글, 법정 스님 말씀처럼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일지 모른다. 남은 사람들에게 주는 글이 아닌 내게 보내는 글, 나를 일으키는 글이다. 나도 유서를 써야겠다. 미리 쓴 유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