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장희원 |
진정 “어메이징 그레이스”였습니다. 딸이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제왕절개 수술로 막내를 낳던 날 단산 수술을 권하는 의사에게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혼인강좌 때 자연 피임 외에 의료 기술이나 기구를 이용한 피임은 교리에
어긋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며 부부가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얼마 후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아이가 쌍둥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참 지나서 아들 쌍둥이라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산모가 노산이라서 위험을 안고
출산했는데 뜻밖에 건강하게 태어났고 형 이삭이를 쏙 빼다 닮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이름도 이사야서 40장에서 독수리 같은 힘, 솟아나는 샘을 따다가 큰 쌍둥이는 ‘힘’,
작은 쌍둥이는 ‘샘’이라고 지었습니다.
아이들 4명이 북적거리는 딸의 가정을 보면서 동화
속의 한 장면을 그려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맹아학교를 졸업하고 그 학교에서 신설한
전문대에 다니고 있는 이삭이는 언제나 이 가정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벤트를 이삭이의 취향에 맞춰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견스럽습니다.
쌍둥이는 신앙생활이 몸에 젖어 있고 성경을 많이
읽게 하는 부모의 교육이 제 마음을 기쁘게 해 줍니다. 이제는 어린 쌍둥이가 제게
종알거리는 말로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 하느님께서 저희 가정을
많이많이 사랑하셔서 예수님하고 같이 살게 해 주셨어요. 이삭이 형이 바로 예수님이에요.
저희 쌍둥이는 예수님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되어 줄 거예요” 하면서 이삭이를
부축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이삭이의 사고를 겪으며 여러 가지 질병이 찾아와
고생하던 사위는 건강을 회복하고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딸도 쌍둥이와
그의 아빠가 티셔츠를 세트로 입고 자전거로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모습을 보며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처럼 쌍둥이를 예비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무한 감사를 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삭이를 간병하면서 큰 자산을 얻었습니다.
올해로 신앙생활 60년을 맞아 74세 할머니가 되어서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부활을 기대할 수 없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성서 백주간 모임을 지속적으로 하며 생명의 양식을
얻고 숨 쉬는 순간들이 기도가 되기를 원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 양식과 호흡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여 군산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 봉사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남은 삶은 말씀과 기도와 봉사가 삼위일체 되어 주님
앞에 예쁘게 봉헌되기를 소망하면서 이웃에 장애인을 둔 많은 가정이 주님께서 주시는
야훼이레 축복으로 행복해지기를 기도하며 살고 싶습니다.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이삭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잠들어 있을 때 저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시간
저를 위로해 주는 것은 말씀밖에 없었습니다. 그 옛날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리사이에게 하신 말씀이 저를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 속에 교훈이 담겨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자산을 무엇으로 얻을 수 있을까? 부자가 된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이 말씀을 들으며 무심코 흘려보내던 시간이 깨어
기도하는 시간이고 싶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보니 이렇게 좋은
것들을 이삭이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이삭이가 마지막으로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도 야훼이레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 암 환우들에게 필요한 봉사를 해드리면서
제 앞날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영적
지지를 하면서 환우들을 얼싸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힐링 시낭송’ 봉사를
할 때에는 이삭이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동요를 불러주던 추억이 되살아나서 환우들이
이삭이로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말벗 되어 드리기’ 봉사를 하면 환우들의
마음이 열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많은 환우에게 비상
세례를 드리면서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참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고 계신 환우들을 한 분이라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제 전화는 24시간 열려있습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결정되면 연락해주세요” 하면서 명함을 드리고 오면 한밤중이나 새벽에 연락이 올
때가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서 대세를 드리고 장례 예절도 안내해 드리면
가족들이 신자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 교구장 사목 교서가 발표되면서
저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 활동과 관계가 깊은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
인생길 걸어가며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에
함께 해준 도반도 많고 스승도 많았지만, 우리 주님 한 분 만난 것은 제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인생 마지막 혁명이었습니다. 어디든 주님 손만 잡고
간다면 두려움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이토록 큰 은혜를 혼자만 누리기가 아까워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삭이와 함께했던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 환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제 일상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구장님
사목 교서의 말씀대로 저는 이 병원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열심히 협력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축복해주신 야훼이레 하느님을 체험한 믿음
하나로 제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그 날까지 병원에서 환우들을 위하여 봉사하리라
다짐하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18년 전 기억 속을 여행해 보았습니다. 그때 이삭이를
간병하면서 쓴 시 한 편으로 이글을 마칩니다.
너와 나의 만남은
내 삶 속에 가장 밝은 빛이었지
네가 무럭무럭 자라며 이쁜짓 한 번 할 때마다
너의 밝은 빛은 내 마음속에 환하게 퍼져 나갔지
이렇게 고작 여섯 해
도대체 너의 빛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풀밭에서 사마귀를 잡았다고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주웠다고
경이롭고 신기해하던 너의 맑은 눈동자
지금도 내 마음에 가득히 차오르는구나
그러나 이삭
빛은 여전히 있는 거란다.
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 실제로는 없는 거란다
허상으로 있는 어둠에 매이지 말고
여전히 있는 네 빛을 비추어라
살아가면서 세상의 오염으로
빛이 없어졌다고 느껴지거든
너 스스로 빛이 되거라
너의 삶이 하늘 아버지의 가장 좋은 선물이거든
이웃에게 주는 또 하나의
따뜻한 선물이 아니겠느냐?
사랑하는 이삭
모리야 제단에서
분향같이 올려지는 기도의 향기 속에
곱게 곱게 자라서 가지고 온 하늘씨앗
충실히 가꾸는 하늘 사람되거라
이정희(데레사, 전주교구 지곡본당)
▲ 이정희 데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