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야훼이레 하느님을 체험하며

(가톨릭평화신문)

▲ 삽화=장희원



이삭은 제가 첫 번째로 안아본 손주이기에 유난히 예뻐했습니다.

딸이 적령기에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좀 늦어지자 시댁에서 이렇게 덕담을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넌 아직도 밥값을 못하냐?” 초조한 마음이 들었는지 딸과 사위는 신앙생활을 더욱 성실하게 했고 신앙 안에서 만난 부부답게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드디어 첫 아들을 낳자 미리 지어놓은 이름이라며 “이삭” 하고 불렀을 때 부모의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가족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세례명과 이름을 같게 지었다며 이튿날 출생 신고를 하고 행복해하는 딸의 가정에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건강하게 잘 자라며 여동생 이다가 태어나고 그의 엄마가 오래도록 근무하던 성심유치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딸은 아이들 다 낳았으니 전공을 살리고 싶다며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성심유치원 수녀님과 자모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영아 전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집 이름을 ‘이삭몬테소리어린이집’이라고 지은 것도 아들 이삭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가나 시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예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 부부에게 계속 덕담을 해줬습니다.

“아들, 딸 낳아 자녀 문제 해결했으니 너희는 이제 돈 벌 일만 남았구나.”

덕담이 축복이 되어 국가 지정 영아 전담 어린이집으로 선정되었고, 지역에서 손꼽는 영아전담시설로 자리 잡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삭이 여섯 살 되던 해. 상상도 못 했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체육관에 갔다 오던 이삭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날 체육관 승합차 기사가 결근하여 사범이 대신 차를 운전하다가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냈다고 했습니다. 이삭이를 집 앞에 내려주고 차 앞으로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는 이삭이가 보이지 않아 잘 들어갔으려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들어가는 이삭이를 확인 못 한 실수를 깨닫고 뒤를 돌아보니 피투성이의 아이가 쓰러져있어 응급실로 옮기며 가족에게 전화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출혈이 심했고 뇌와 심장을 밟고 지나가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때 저도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제발 생명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모의 기도를 들으며 응급실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응급조치를 급히 끝내고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중에도 아이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당시 일어났던 상황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눈앞에 어른거려 제 가슴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는 제게 말씀으로 강한 힘을 주셨습니다. 남편이 오랜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뜰 때에도 이렇게 뜨거운 영적 체험을 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창세 22,12)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삭이의 생명을 살려주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기운이 솟아나고 용기가 났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뇌수술 일정이 정해지고 이삭이의 마지막을 보려고 달려온 가족들이 모두 넋을 잃고 있는데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삭이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치료는 의료진에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어 보아도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이제 돌아가셔서 기도 많이 해 주시고 각자 생업에 임하십시오. 제가 남아서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상태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삭이의 부모에게 따로 일렀습니다. “평정심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어린이집 아이들과 교사들 그리고 자모들을 대하여라. 시설을 운영하려면 표정관리도 중요하다. 원장의 불안한 표정은 아이를 맡기는 자모에게도 안정을 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저 혼자 남아 이삭이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장애를 입어도 좋으니 생명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모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 은총으로 두 번의 뇌수술 끝에 아이는 생명을 건지면서 시신경이 크게 손상되어 전맹의 시각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뇌 역시 성장을 멈추고 중복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다리와 심장은 치료가 잘 되어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걷게 된 것만으로도 주님의 크신 은혜라고 감사드리며 휠체어와 이별할 때는 병실에서 가족 파티를 열었습니다.

아이를 간병하며 일 년간 병원생활을 하고 퇴원 후 우리 집에서 한동안 통원 치료를 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때가 일생을 통해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저 형식적이요 율법적이었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 2,13)

천주교 신자라고 드러내면서 주님의 십자가는 아랑곳없이 겉으로 보이는 활동에만 전전하며 얼마나 교만한 삶을 살아왔는지 부끄럽기 그지없는 저에게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주시며 내적 치유와 함께 위로를 주셨습니다. 형식적으로 바라만 보던 십자가의 예수님을 가슴으로 만나며 동참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견디기 힘들었던 십자가는 제게 내공을 키워주는 힘과 용기가 되었기에 더욱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참담하게 무너져가는 딸의 가정을 지켜보면서 극복할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애원할 때에 믿음이 굳건해 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살맛을 잃어 가는 부모와 그 틈바귀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어린 손녀가 불쌍하여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이삭이한테서 모든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의 아빠는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인생길을 헤맸습니다. 안 피우던 담배를 피우고 새벽에 휙 어딘가를 나갔다가 만취되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좋은 말씀을 전해주어도 “어머니는 한 다리 건넜으니 제 마음을 이해 못 해요” 하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저는 기도 중에 가슴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그때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또다시 한 말씀으로 제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창세 22,13-14)

주님은 이 가정을 그대로 두시는 분이 아니심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야훼이레 하느님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원생활과 간병생활을 마치고 가정이 안정을 찾는 데는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삭이의 부모도 많은 것이 변했지만, 신앙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대로여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야훼이레 하느님께 맡기는 삶을 살다 보니 아무 걱정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외가인 우리 집에서 몸조리를 마친 이삭이를 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날, 서운했지만 잘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가족과 함께 기도하면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삭이가 다친 지도 8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삭이가 보고 싶어 방문했더니 사위의 얼굴이 활짝 펴있고 미소가 계속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제가 놀라 쓰러질 것 같은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진정 “어메이징 그레이스”였습니다. 딸이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제왕절개 수술로 막내를 낳던 날 단산 수술을 권하는 의사에게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혼인강좌 때 자연 피임 외에 의료 기술이나 기구를 이용한 피임은 교리에 어긋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며 부부가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얼마 후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아이가 쌍둥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참 지나서 아들 쌍둥이라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산모가 노산이라서 위험을 안고 출산했는데 뜻밖에 건강하게 태어났고 형 이삭이를 쏙 빼다 닮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이름도 이사야서 40장에서 독수리 같은 힘, 솟아나는 샘을 따다가 큰 쌍둥이는 ‘힘’, 작은 쌍둥이는 ‘샘’이라고 지었습니다.
 

아이들 4명이 북적거리는 딸의 가정을 보면서 동화 속의 한 장면을 그려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맹아학교를 졸업하고 그 학교에서 신설한 전문대에 다니고 있는 이삭이는 언제나 이 가정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벤트를 이삭이의 취향에 맞춰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견스럽습니다.
 

쌍둥이는 신앙생활이 몸에 젖어 있고 성경을 많이 읽게 하는 부모의 교육이 제 마음을 기쁘게 해 줍니다. 이제는 어린 쌍둥이가 제게 종알거리는 말로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 하느님께서 저희 가정을 많이많이 사랑하셔서 예수님하고 같이 살게 해 주셨어요. 이삭이 형이 바로 예수님이에요. 저희 쌍둥이는 예수님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되어 줄 거예요” 하면서 이삭이를 부축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이삭이의 사고를 겪으며 여러 가지 질병이 찾아와 고생하던 사위는 건강을 회복하고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딸도 쌍둥이와 그의 아빠가 티셔츠를 세트로 입고 자전거로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모습을 보며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처럼 쌍둥이를 예비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무한 감사를 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삭이를 간병하면서 큰 자산을 얻었습니다. 올해로 신앙생활 60년을 맞아 74세 할머니가 되어서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부활을 기대할 수 없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성서 백주간 모임을 지속적으로 하며 생명의 양식을 얻고 숨 쉬는 순간들이 기도가 되기를 원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 양식과 호흡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여 군산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 봉사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남은 삶은 말씀과 기도와 봉사가 삼위일체 되어 주님 앞에 예쁘게 봉헌되기를 소망하면서 이웃에 장애인을 둔 많은 가정이 주님께서 주시는 야훼이레 축복으로 행복해지기를 기도하며 살고 싶습니다.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이삭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잠들어 있을 때 저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시간 저를 위로해 주는 것은 말씀밖에 없었습니다. 그 옛날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리사이에게 하신 말씀이 저를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 속에 교훈이 담겨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자산을 무엇으로 얻을 수 있을까? 부자가 된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이 말씀을 들으며 무심코 흘려보내던 시간이 깨어 기도하는 시간이고 싶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보니 이렇게 좋은 것들을 이삭이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이삭이가 마지막으로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도 야훼이레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 암 환우들에게 필요한 봉사를 해드리면서 제 앞날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영적 지지를 하면서 환우들을 얼싸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힐링 시낭송’ 봉사를 할 때에는 이삭이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동요를 불러주던 추억이 되살아나서 환우들이 이삭이로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말벗 되어 드리기’ 봉사를 하면 환우들의 마음이 열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많은 환우에게 비상 세례를 드리면서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참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고 계신 환우들을 한 분이라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제 전화는 24시간 열려있습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결정되면 연락해주세요” 하면서 명함을 드리고 오면 한밤중이나 새벽에 연락이 올 때가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서 대세를 드리고 장례 예절도 안내해 드리면 가족들이 신자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 교구장 사목 교서가 발표되면서 저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 활동과 관계가 깊은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
 

인생길 걸어가며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에 함께 해준 도반도 많고 스승도 많았지만, 우리 주님 한 분 만난 것은 제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인생 마지막 혁명이었습니다. 어디든 주님 손만 잡고 간다면 두려움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이토록 큰 은혜를 혼자만 누리기가 아까워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삭이와 함께했던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 환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제 일상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구장님 사목 교서의 말씀대로 저는 이 병원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열심히 협력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축복해주신 야훼이레 하느님을 체험한 믿음 하나로 제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그 날까지 병원에서 환우들을 위하여 봉사하리라 다짐하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18년 전 기억 속을 여행해 보았습니다. 그때 이삭이를 간병하면서 쓴 시 한 편으로 이글을 마칩니다.




이삭을 위하여





이삭!

너와 나의 만남은

내 삶 속에 가장 밝은 빛이었지

네가 무럭무럭 자라며 이쁜짓 한 번 할 때마다

너의 밝은 빛은 내 마음속에 환하게 퍼져 나갔지

 

이렇게 고작 여섯 해

도대체 너의 빛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풀밭에서 사마귀를 잡았다고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주웠다고

경이롭고 신기해하던 너의 맑은 눈동자

지금도 내 마음에 가득히 차오르는구나

 

그러나 이삭

빛은 여전히 있는 거란다.

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 실제로는 없는 거란다

허상으로 있는 어둠에 매이지 말고

여전히 있는 네 빛을 비추어라

 

살아가면서 세상의 오염으로

빛이 없어졌다고 느껴지거든

너 스스로 빛이 되거라

너의 삶이 하늘 아버지의 가장 좋은 선물이거든

이웃에게 주는 또 하나의

따뜻한 선물이 아니겠느냐?

 

사랑하는 이삭

모리야 제단에서

분향같이 올려지는 기도의 향기 속에

곱게 곱게 자라서 가지고 온 하늘씨앗

충실히 가꾸는 하늘 사람되거라
 


이정희(데레사, 전주교구 지곡본당)

▲ 이정희 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