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9)말은 그렇게 해도 속에는 이런 뜻이… (중)

(가톨릭평화신문)


라틴어 속담에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드러난 말과 행동은 숨겨진 마음을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외적 행위가 내면의 마음을 반영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드러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백화점 명품관 매장에 평범한 옷차림의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값비싸 보이는 외투를 입어보면서 매장 점원에게 말을 건넨다. “이 옷 얼마에요?” 그러자 점원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거기 옷에 붙어 있는 가격표 보시면 되는데요?” 그때 이 여성은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가격을 물었는데 가격표를 보라니요. 누가 가격표를 볼 줄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라고 항의했다. 그제야 점원은 정색하면서 “아, 죄송합니다. 손님, 그 외투 가격이 할인해서 870만 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손님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네? 이 옷 한 벌 주세요”라며 선뜻 옷을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점원은 “이번 특별 기획가로 나온 것이라 한 번 구매한 후 교환 환불은 어렵습니다. 고객님!” 하고 응대했다. 그러자 손님은 “그래요! 처음엔 마음에 들었는데 자꾸 걸쳐보니 내 스타일은 아니네요?” 하면서 총총걸음으로 매장을 나왔다.

겉으론 위와 같은 대화가 오갔지만 실제로 이 두 사람의 속마음에서는 다른 의미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점원은 한눈에 이 여인이 자신의 매장에서 옷을 살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가격을 묻는 고객에게 가격표를 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어차피 살 것도 아니면서 가격은 왜 묻는 거죠? 정 알고 싶으면 가격표 보고 나서 그냥 당신 갈 길을 가세요”라는 의미가 숨어있을 수 있다.

여인은 점원의 속뜻을 이해한 것 같다. 점원의 불친절에 항의했기 때문이다. 이 여인의 내면에는 “내가 가격을 알면 놀라서 도망갈 사람으로 보입니까? 나 당신이 그렇게 무시할만한 사람 아니다”는 의미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점원은 곧 예의를 갖추고 사과를 하면서 가격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 속내는 “아~ 그래요?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라는 빈정거림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여인은 역시 그 속뜻을 금방 알아채면서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생각보다 비싸지 않네!”라며 선뜻 옷을 구매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 속에는 “왜 놀랐습니까? 당신이 무시할 그런 사람 아니다”는 의미를 숨겼을 수 있다.

점원은 “교환 환불이 안 되는 상품인데 그래도 구매하겠느냐”며 마지막 초강수를 던진다. 꼼수를 부리며 자존심 세우지 말라는 속내가 엿보인다. 이쯤 되니 여인은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약이 바짝 오른 상태가 된다. 하지만 품위를 유지하면서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요! 처음엔 마음에 들었는데 자꾸 걸쳐보니 내 스타일은 아니네요”라면서 옷을 사지 않는 명분을 들이밀었다. 자신이 그냥 돌아가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옷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화는 겉으로는 손님과 점원이 가격 정보를 주고받는 대목이지만, 속으로는 자존심을 건 한 판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면교류는 인격적인 만남과 진실한 소통을 방해한다. 이 점에서 두 모녀의 대화로 다시 돌아가 보자.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