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자와 패널들이 교황의 특별 기도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조정래·최준규·곽진상 신부, 김혜윤 수녀. 백영민 기자 |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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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돌풍과 풍랑을 겪은 제자들과 예수님의 상황이 지금과도 꼭 맞는다.
곽 신부 : 마르코 복음 그 구절은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의 기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자들은 겁에 질렸는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예상치 못한 모습이다. 바로 거기에 메시지가 있다. 교황도 그 부분을 짚어 냈다. 고물은 배 뒤편이다. 풍랑이 일 때 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부분이다. 예수님이 고물에 누워 계셨으니 풍랑이 일 때 가장 먼저 알아채셨고 가장 먼저 물에 맞으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편안하게 계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받기 전에 먼저 고통받으셨다. 고통과 두려움을 나 몰라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먹고 있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상황과 너무 잘 맞는 훌륭한 대목이다. 교황의 강론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교황이 예수님과 정말 가깝게 만나고 있음을 느꼈다.
▲ (왼쪽)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마르첼로 성당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오른쪽)교황이 성체가 든 성광을 들고 강복하고 있다. |
최 신부 : 천주교 신앙에서 볼 때 신자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분은 성모님이다. 성모님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모든 돌봄을 제공하는 자비로운 어머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위기 때마다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께 전구를 청해왔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 수녀 : 방송을 통해서 전례에 참여했는데 카메라가 계속해서 십자가를 보여줬다. 전례를 주례한 건 교황이었지만 전례의 실질적 주인공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 이콘도 십자가 옆에 비켜서 있는 모습이었다. 온전한 주인공이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중심의 자리를 내어주는 연출이 아닌가 싶었다.
사회 : 성체 현시와 성체 조배도 이어졌다. 우리는 영적인 힘을 얻을 때 성체 앞에 모인다.
최 신부 : 성체 조배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를 성찰하며 내가 얼마나 미소한 지를 깨닫는 시간이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지혜와 은총을 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성체 조배를 하면 성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평화와 안정감을 체험하게 된다.
사회 :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왜 이렇게 수십만 명이 죽는 일이 생기는 것인가.
김 수녀 : 하느님께서 왜 고통을 허락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르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느님께서 허락하는 고통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고통이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이 단절된 데서 이 사태가 발생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인간이 스스로 배제한 것이다. 생명이 단절된 상태이니 당연히 죽음과 고통, 억압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 책임을 두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결국엔 하느님과 어긋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곽 신부 : 교황 강론에 분명히 나온다. 제자들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은 가만히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먼저 고통을 받으시고 고통에 함께하셨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선 고통을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최 신부 : 예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는가. 오래된 질문이다. 고통을 겪을 때마다 반복하는 질문이다. 주님의 섭리 아래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섭리가 무엇일까. 먼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고통을 반성과 회심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많은 이들이 함께해야 한다. 고통은 형제적 협력을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러한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 더 좋은 제도와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고통은 이러한 깨달음을 이끌어 내는데 이런 게 모두 주님의 섭리다.
사회 : 신학 안에서도 고통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고 있지 않나.
곽 신부 : 고통과 관련된 물음은 비판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굉장히 실존적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어디서 어떻게 고통을 당했는지 묻지 않으셨다. 그저 고통에 함께하며 같이
아파하셨다. 측은지심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이가 자신의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원해주는 분이다.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은 당신
삶으로 대답해 주셨다.
사회 : 그동안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던 것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 신부 : 교황이 강론 중에 평범한 분들을 열거했다. 의사, 간호사, 미화원, 슈퍼마켓 직원…. 한 분 한 분 부르시는데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차를 마시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평범한 일이 갑자기 평범하지 않게 됐다. 평범한 것들을 새롭게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소하고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김 수녀 : 공동체 수녀들과 나눔을 했는데 한 수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특정 나라, 특정 동물, 특정 종교 탓으로 돌렸는데 교황 말씀을 들으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집중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는 성찰에 공감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가 아닐 때 나오는 부조리와 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곽 신부 : 지금의 어려움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해주고 있다. 무엇이 정말로 어려운 일인지를 식별하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듯하다. 이 시대 사목자와 신앙인은 무엇이 내 삶을 이루게 하는 요소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가족과 이웃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삶은 혼자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 : 그리스도인에게는 희망이 있다. 고통과 어려움에서 놓지 말아야 할 단어가 아닐까 싶다.
최 신부 : 교황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내 희망을 생각했다. 희망의 근거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격리된 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각자의 집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 놓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런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김 수녀 : 희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들 가운데 하나로 교황은 슈퍼마켓 직원과 같은 이들을 예로 들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품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일수록 하느님과 밀접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선 가난 속에서 일하신다는 증거다. 가난한 이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경외가 있을 때 우리는 분명 호수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희망한다.
곽 신부 : 희망의 근거야말로 바로 예수님 모습이다.
예수님께선 절망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잊지 말자.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