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사순절과 40(박현도, 스테파노,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가톨릭평화신문)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것이 멈춰 섰지만, 사순절을 지나 우리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았다. 해마다 사순절은 십자가의 고통을 새기는 시기지만, 올해는 코로나가 불러온 전대미문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그 어느 때보다 찬찬히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순절은 40일 동안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기다. 그런데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부활 전까지 날짜를 가만히 세어보면 40일이 아니라 46일이다. 주일을 빼고 세는 등 이런저런 역사 속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현재 우리의 사순절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재의 수요일부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한 성목요일 만찬 직전까지의 날이다. 부활의 영광이 드러나는 파스카 성삼일을 사순 시기와 구별하기에 파스카 성삼일을 빼고 다시 세어보아도 40일이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순절이라고 하는 이유는 40이라는 숫자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기도를 하셨다는 루카 복음(4,1-2) 기사처럼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상징적인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중근동문화권에서 40은 완성과 성숙을 뜻하는 숫자였다. 고 조철수 박사를 따르면 고대 수메르문화에서 40이 악신을 쫓아내는 지하수 신의 숫자로 정결의 상징이었다. 이는 중동 전역에 퍼져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도 40은 예외 없이 정결, 성숙, 완성의 상징으로 두루 쓰였다. 구약성경에 눈을 돌려보면 노아의 홍수 때 40일간 비가 왔고, 모세는 십계를 받기 전 40일간 단식했으며,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였다. “정말 40일, 40년이었을까?”라고 굳이 물을 필요는 없다.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 46장 15절에 “그가 성년이 되고 나이 사십이 되면”이라고 쓰여 있는데, 여기서 40은 성숙, 완성, ‘많다’는 뜻이다. 무함마드가 25살 때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 카디자는 40세였다. 생물학적인 나이를 나타낸 말이 아니라 그만큼 성숙한 여인이었다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무함마드는 40세 때 예언자가 되었다.

또 이슬람교 전승에 따르면 알라(이슬람교의 하느님)는 40일 동안 두 손으로 최초의 인간 아담을 빚을 원재료인 흙을 만들었다. 험담을 일삼는 사람의 기도는 40일 동안 들어주지 않고, 무함마드의 언행 전승 40개를 기억하는 사람은 부활의 날 뛰어난 학자로 삼는다. 맹인을 도와 40 발자국 거리를 함께 걷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하는 기도는 40일 동안 아무런 효과도 없으며, 40일 밤낮으로 기도해야만 마음과 혀에서 지혜의 샘이 솟는다. 산모는 아이를 낳고 40일이 돼야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사람이 죽은 지 40일째 되는 날 우리로 치면 탈상을 한다.

641년 유서 깊은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무슬림 장군 아므르 이브닐 아스는 “4000개의 목욕탕이 있는 4000채의 집, 인두세를 낼 4만 명의 유다인, 400개의 유흥시설이 있는 도시를 점령하였습니다”라고 지도자에게 보고하였다. 이처럼 40을 10배, 100배로 늘려 ‘아주 많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숫자 40의 뜻이 참으로 흥미롭다.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논어), “아사십부동심(我四十不動心)”(맹자)을 인용하며 굳건한 40세를 말하던 조상들처럼 지난 사순절 내내 우리 교회는 코로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홀로 특별기도 예식을 집전한 우리 교황 프란치스코, 이웃을 위해 주일미사를 온라인으로 돌린 우리 주교회의. 참으로 아름다웠던 사순절이었기에 미사 없는 텅 빈 성당이라도 오늘 주님 부활 대축일은 더욱 뜻깊게 기쁘다.

이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정결한 40의 마음으로 코로나와 더욱 힘차게 싸워 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