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6. 난민을 이야기하다

(가톨릭평화신문)


프랑스 수녀원에서 10년 넘게 가톨릭평화신문을 받아보고 있다. 그러던 중 2018년 7월 29일 자에 실린 ‘난민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이란 말이 들려요’라는 기사에 나의 두 눈이 집중됐다. 당시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과 관련한 인터뷰 기사였다. ‘아, 한국인들에게는 그들이 매우 낯설겠구나.’ 이주민, 난민에 관한 기사나 이야기는 늘 나의 이목을 끈다.

인터넷을 켰다. 그해 7월부터 제주도에 예멘 난민과 무슬림 사람 수백 명이 입국한 내용이 한국 언론을 장식했다. 사람들이 유튜브에 게재한 영상과 글도 찾아봤다. 많은 이가 혐오, 불신, 두려움이 섞인 감정을 고스란히 댓글로 드러내고 있었다. 예멘 남자들은 자루 같은 긴 옷을, 여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진 모습인데, 한국인들이 볼 때 이런 외모마저도 무척 낯설뿐더러 큰 이질감을 가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도 갔다.

내가 자주 가는 무지개 도시 오베흐빌리에 사람들은 이주민과 난민들을 이질감도, 혐오감도 없이 바라본다.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그러나 프랑스도 이민자들과 크고 작은 부침이 적지 않다. 이슬람교 극단주의자들이 프랑스 내에서 자주 테러를 일으켜 부상자와 희생자들이 엄청나게 발생하는 불상사가 종종 일어나는 탓이다.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다.

2017년 펴낸 나의 책 「국경과 종교와 인종을 넘어 그대들을 사랑합니다」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이슬람교에 대해 미디어를 통해서 안 것이 전부여서 테러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종교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의 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이슬람교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확신을 가지고 가난함 속에서도 열심히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나조차도 이전에 그들을 테러 이미지와 연관시킨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 한국인들이 느끼는 그들을 향한 편견은 나보다 더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경우, 편견은 만남을 통해 깨졌다. 병원에 드나들며 각국에서 찾아온 이민자들과 나눈 대화들 덕분이다. 아무 인연도 없는 그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눈 대화가 점차 인식을 바꿔준 것이다.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고, 고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아픈 사연을 지닌 이들이다.

나도 무슬림 환자와 가족들을 병원에서 만나며 이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이들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친절한 행위를 자주 목격한다. 어느 날 여성 환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도 함께였다. 테러로 인해 TV, 신문 등 언론들은 그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던 터라 프랑스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환자의 가족이 나에게 말했다. “요즘 밖에 나가기가 정말 두려워요.”

그녀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프랑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들마저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고 있구나!’ 테러나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그들 또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종교 간 싸움, 민족 간 싸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비극적인 관계는 수세기에 걸쳐 이어오고 있지 않은가. 평화로운 관계를 건설하려는 두 종교 지도자들과 많은 신자의 기도와 노력에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께서 우리 사이에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 공포와 두려움 말고, 사랑을 택하자.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