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물동이 이고 어디를 가시나요?

(가톨릭평화신문)
 
▲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17일 교황청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과 대사관 관저에서 만찬을 한 후 ‘조선의 성모’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필자 내외, 문 대통령 내외, 한현택 신부(통역).

 

 


주교황청 한국대사관 관저에 오시면 가장 먼저 ‘조선의 성모’가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조각가 오채현씨가 한국의 화강석으로 제작한 한복 입은 성모자상입니다.



쪽 찐 머리의 성모님, 해맑은 미소의 예수님

성모님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등에는 아기 예수님을 업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계십니다. 생명의 물을 목마른 사람들에게 주러 가는 것이겠지요. 달덩이처럼 둥그스레한 얼굴에 쪽 찐 머리의 성모님과 호기심 가득한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기 예수님이 천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외국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은 ‘조선의 성모’를 보고 처음에는 좀 의아해 합니다. 주로 서구형 성모자상만을 보아온 탓이겠지요. 저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한결같이 “원더풀! 원더풀!” 하며 좋아합니다.

‘조선의 성모’는 조선 시대 후기의 서민 여성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이 한국에 처음 전래된 때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문화의 저변에는 불교가 깊숙이 깔려 있습니다. 불교적 요소를 배제한 채 한국 가톨릭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조선의 성모’도 불교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오채현씨는 불교 조각가로 알려져 있지만 가톨릭 영성에도 조예가 깊은 예술가입니다.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나왔고 이탈리아에서 5년 동안 조각 예술을 공부했습니다. 앞서 교황청 한국대사를 역임한 성염 전 대사(10대)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조선의 성모’를 오 작가에게 의뢰했다고 합니다. 축복식은 2005년에 있었습니다. 가톨릭 현지화(한국화)의 대담한 시도입니다.

‘조선의 성모’는 저에게 두 가지의 화두를 던져 줍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성모님은 원래 어떤 모습이셨을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톨릭과 불교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먼저 예수님과 성모님의 피부색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보지요. 요셉 성인은 예수님이 태어난 직후 부랴부랴 짐을 챙겨 피난길에 오릅니다. 헤로데 임금의 영아 살해령 때문이었지요.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마태 2,14-15)

요셉 성인은 물론이고 성모님과 예수님의 피부색과 외모가 이집트 사람들과 구별이 잘 안 될 정도로 비슷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지금과 같은 서구 스타일의 피부색과 외모였다면 당장 들키고 말았겠지요.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대하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은 유럽에서 현지화(유럽화)하여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전형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원형은 어디까지나 중동인 아니겠습니까.

가톨릭과 불교는 유일신론에 대한 근본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수련(수행) 방법에 있어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대침묵 피정과 불교의 묵언 수행만 봐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불교의 수행 방법이 가톨릭의 영성 수련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답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자인 폴 니터 교수(미국 유니언 신학대)의 ‘두레박론’이 꽤 흥미롭습니다. 폴 니터는 오랫동안 불교 연구를 하며 참선 수행을 해왔고 ‘연꽃 치유자’라는 법명으로 수계를 받은 가톨릭 신학자입니다. 그는 저서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클리어마인드 출판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맑은 물이 솟는 좋은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우물이 아주 깊어요. 어떻게 물을 떠먹지요? … 불교는 그리스도교 우물의 깊고 신비로운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두레박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저에는 외빈이 많이 오십니다. 오찬이나 만찬, 또는 간담회 등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지요. 손님마다 ‘조선의 성모’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습니다. 성모님이 이고 계신 ‘생명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가는 뿌듯함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아름답고 거룩한 성모자상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면담하기 위해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교황청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과 관저에서 만찬을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원래 어떤 국가의 정상과도 식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교황청의 행정 수반인 국무원장이 식사 의전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이날 만찬은 사실상의 국빈 만찬이었지요. 파롤린 추기경도 ‘조선의 성모’를 보시고 “한국의 성모자상이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하다”며 감탄하셨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