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돋보기] 고 안토니오 신부의 살신성인

(가톨릭평화신문)


‘탕~ 탕~!’

1950년 6월 27일 춘천의 한 강변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내 로만 칼라를 한 사제가 평신도를 부둥켜안은 채 모랫바닥에 처참히 쓰러졌다. 인민군의 총격에 스스로 신자를 위한 방패가 되어 선종한 고 안토니오 신부의 순교 순간이다. 37세에 불과한 젊은 사제였다. 전쟁 발발 이틀째, 포화와 총성은 여전히 춘천시를 시커멓게 뒤덮고 있었다.

꼭 70년 뒤인 지난 6월 27일 안토니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사목했던 춘천교구 소양로본당이 설립 70주년을 맞았다. 안토니오 신부의 순교 70주기이기도 한 날이었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춘천의 선산 봉의산 자락을 지켜온 본당 설립을 기쁜 마음으로 기념하면서도 자신이 돌보던 신자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목자를 기억하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심정이 교차하는 자리였다.

당시 안토니오 신부의 품에서 목숨을 건진 이는 본당 교리교사였던 김경호(가브리엘)씨. 안토니오 신부는 최후의 순간에 “자네는 꼭 살아야 하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재빨리 쓰러지게. 내가 쓰러지면서 자네를 덮치겠네”라며 김씨를 다독였고, 하느님은 양 떼를 지킨 의로운 사제를 곁으로 데려갔다.

아일랜드 출신 벽안의 선교사였던 안토니오 신부는 당시 교구장이던 같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 구인란 몬시뇰의 “피신하라”는 당부도 뒤로하고, “성당을 지키겠다”며 춘천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보다 무엇이든 풍요로웠을 고국을 떠나 타지의 전쟁통에 머물렀던 안토니오 신부의 정신은 ‘살신성인’으로 대변된다. 죽음의 두려움도 뛰어넘은 깊은 사랑과 순교 정신은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 교회는 안토니오 신부를 비롯해 신자들을 월남시키다 피랍돼 선종한 이광재 신부 등 한국전쟁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염원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는 당시 순교자들이 지녔던 깊은 믿음과 사랑의 마음이 오늘날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해 쓰이도록 간청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