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6) 자녀는 부모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중)

(가톨릭평화신문)


레지나 자매는 아들이 보내 준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며 사실 기쁘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보면 언제나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다. “기쁘다” “행복했다”라는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보다는 “마음이 놓인다”는 좀 더 누그러진 표현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인다”는 표현은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표현한 말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잘못 들으면 “걱정을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이것은 기쁘고 행복한 어머니의 마음을 전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아들이 미덥지 않고 걱정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는 표현들은 자식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레지나 자매는 아들에게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이 손자 손녀를 제대로 교육하도록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교육하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 레지나 자매는 따라서 부모의 조언이 모두 듣기 싫은 잔소리로 매도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지나 자매에게 “아들이 손자 손녀의 모습을 찍어 어머니에게 보낼 때 혹시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했다. 레지나 자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손자 손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 자신의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물론 레지나 자매는 어머니로서 아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양육과 관련된 할머니로서의 걱정과 훈계는 그 고마움에 대한 표현이 아들에게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하나의 이야기를 꺼내보면 다음과 같다. 막내딸이 모처럼 가족이 함께 식사하면 좋겠다면서 부모님과 오빠들을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즐거운 식사와 더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막내딸은 이 저녁 식사를 초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남편의 회사가 최근 어려움에 처해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진행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회사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고 약간의 자랑스러운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버지를 비롯한 오빠들은 모두 한결같이 기뻐하면서 매부가 똑똑하고 대단하다며 칭찬과 축하를 마다치 않았다. 어머니인 레지나 자매도 가족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서방이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했다니 정말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구나.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더 겸손하게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단다. 하느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절대 이런 경사가 생길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모든 것이 하느님이 해주셨기에 가능한 것인데, 마치 자기 자신이 잘해서 일도 잘되고 승진을 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하느님은 그 교만을 고쳐주시기 위해 베풀어 주셨던 은총도 거둬가실 수 있는 분이란다.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경거망동하지 말고 더 겸손하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도록 하자꾸나. 우리는 하느님 없이는 결코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단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