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깨우침의 은혜(신동진, 루도비코, 아나운서)

(가톨릭평화신문)



누구에게나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채 사는 울림의 고향이 있습니다. 그 고향은 자신이 태어난 곳일 수도 있고 마음의 고향일 수도 있습니다. 제 선친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릴 적 뛰놀던 시골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고향이 그리우셨던 거지요. 저의 대학 은사님은 자신의 옛 스승이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와서는 변함없는 교정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고향이었던 교정에서 많은 회한이 들었을 겁니다.

저에게도 제 몸과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입니다. 젊은 시절, 군에 입대하고 늘 배고팠던 훈련소에서 주일에는 성당에 가서 달달한 커피를 마셨고 어렵게 얻은 초코파이는 밤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퇴소식 직전에 가족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에는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적어 보냈는데, 불고기, 양념치킨, 과일, 김밥 등을 잔뜩 적었습니다. 그땐 정말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퇴소식 날 어설픈 철모와 훈련복을 착용하고 까맣게 그을린 채 열병식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머, 저기 우리 애기 있네!”

훗날 어머니와 같이 왔던 친구가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너희 어머니가 너 과일 좋아한다고 엄청 싸가지고 가셨어. 너 지나갈 때는 동진이가 왜 저렇게 새까맣게 탔냐며 우시더라.”

어머니는 제가 군대를 제대해서도 한동안 애기로 부르셨습니다. 그만큼 품 안의 자식이라 여기셨고 강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생각하셨던 거겠지요. 그러다 다 컸다고 여기셨는지 조금씩 막내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어느 무렵부터 더는 아기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 신앙의 고향이시기도 합니다. 제 신앙생활을 이야기하는데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입니다. 아기가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제가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으며, 얼마 전 늦둥이를 낳은 지금, 노심초사 아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어머니를 떠올려봅니다. 어머니는 늘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저에게 정확하고 단순한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제가 삶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당신의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여주신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들려주신 예화에서 아들에게 “성모님께 가보거라. 그분이 네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실 거야”라고 조언했다는 어떤 어머니처럼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깨우침을 제시할 줄 아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지니고 있는 어머니 여러분, 자녀들을 위해서도 이 은혜를 청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깨우침의 은혜입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모두에게 깨우침의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성모님께 간구합니다. 또한, 지혜로 가정을 이루어 우리 모두 성화된 삶을 살기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