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님! 폭삭 속았수다. 고맙수다”

(가톨릭평화신문)
▲ 제4대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17일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린 퇴임 감사 미사에서 18년 간의 활동사진을 모아 자신의 얼굴을 형상화한 모자이크 그림 액자를 받고 미소 짓고 있다. 제주교구 제공



“주교님! 폭삭 속았수다(‘고생 정말 많으셨다’는 제주어). 고맙수다.”

제주를 뜨겁게 사랑한 화해와 평화의 목자, 제4대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의 퇴임 감사 미사가 17일 삼위일체대성당에서 봉헌됐다. 2002년 10월 8일 착좌한 강 주교는 교구장을 지낸 18년 동안 4ㆍ3 사건의 참상을 알리고, 제주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데 힘썼다. 또 강정 해군기지와 제주 제2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등 제주의 평화와 생태환경을 지키는 데도 앞장섰다.

강 주교는 강론에서 이처럼 헌신적인 사목을 펼친 이유에 대해 “(4ㆍ3사건을 알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주도민을 뵙기에 너무 죄송하고 가슴이 따가웠다”며 “국가가 저지른 불의와 폭력에 대해 속죄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이어 “예수님이 왜 이스라엘도, 로마도 아닌 ‘하느님 나라’를 자꾸 입에 올리셨는지 느끼게 됐다”며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들이 서로를 같은 하느님 자녀로 아끼고 존중하는 한가족이 되도록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 (교구민) 여러분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동지가 돼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강 주교는 “저를 형제로 맞이해준 덕에 외딴 섬나라에 갑자기 떨어졌어도 외롭지 않고 기쁘게 지냈다”며 교구 사제단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날 미사 성찬 전례 중에는 강 주교와 함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교우들이 각자의 활동 상징물을 봉헌했다. 제주교구 소공동체에서는 본당 복음화 양성 교재를, 교구 생태환경위원회는 하논분화구에서 생산한 쌀과 양초로 만든 제주 그림을 봉헌했다. 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는 예멘의 상징인 칼과 베트남 성모상을 봉헌했다. 예멘과 베트남은 각각 나오미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이주민과 제주에 가장 많이 체류하는 이주민의 출신국가다. 교구 청소년사목위원회는 강 주교가 청소년에게 심어준 희망을 키우겠다는 의미로 작은 나무 화분을, 강정 평화활동가들은 해군기지 주변에 농사를 지어 거둔 쥐이빨옥수수와 동부콩 등 토종 씨앗을 봉헌했다.

퇴임 미사에 이은 축하식에서 강 주교는 꽃다발과 함께 영적ㆍ물적 선물을 받았다. 영적 선물은 미사 봉헌 747회ㆍ미사 참여 1만 6341회ㆍ성체 조배 9932회ㆍ주교를 위한 기도 3만 2459회ㆍ묵주기도 29만 2863단 등이다. 물적 선물은 예멘 난민이 만든 묵주 주머니와 4ㆍ3사건의 상징인 동백 배지다. 선물은 광목천 주머니 안에 담아 예멘 소녀가 전달했다. 18년 동안의 활동사진을 모아 강 주교 얼굴을 형상화한 모자이크 그림 액자도 선물로 전해졌다.

교구 사제단은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를 부르고 춤을 추며 강 주교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했다. 사제단 대표 양영수(화북본당 주임) 신부는 “평화의 섬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주교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며 “주교님이 이룬 업적을 바탕으로 교구 사제단이 새 교구장 중심으로 일치를 이뤄 열심히 사목하겠다”고 다짐했다. 고용삼(베네딕토)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은 “주교님은 교회를 넘어 어둠이 있는 곳, 아픔이 있는 곳은 어디든 함께 하며 성경 말씀대로 실천적인 삶을 살아왔다”며 “그 숭고한 뜻을 받들어 평신도 사도직의 책무를 잘 이행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신임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도 감사를 전하며 “18년 동안 아낌없이 보여준 제주 사랑과 하느님을 닮은 목자로서의 모습을 절대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제주교구 사제와 수도자ㆍ평신도와 함께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ㆍ최창무(전 광주대교구장) 대주교ㆍ옥현진(광주대교구 총대리) 주교ㆍ조규만(원주교구장) 주교 등이 참석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