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 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왼쪽)와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신부가 제주교구 주교관에서 대담하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TV는 12월 중 강우일 주교와의 특별 대담을 방영할 예정이다.



“제주도민과 제주교구 신자들이 저를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주셨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과 인터뷰에서 18년간의 교구장 소임을 끝내며 제주도민과 교구 신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기쁘게 돕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교구장 소임을 내려놓고 원로사목자의 길에 들어선 강 주교를 주교관에서 만났다.



- 18년 동안 사목하신 교구장 자리에서 내려오시면서 퇴임 미사, 기자회견까지 다 마치셨는데 소회가 어떠신지요.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행복한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참 사연이 많은 땅에 내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가슴속에 묵직한 것이 짓누르고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지만 제주도민들이 저를 마음으로 잘 맞아줬고, 신자들도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셔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 어떤 사목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사목자들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서는 할 일을 다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콘크리트 담을 허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우리 행동과 신앙생활의 모든 양상을 교회 공동체 안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좀 더 확산시켜 나가야 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제주가 과거에 ‘신축교안’, 1901년 선교 초창기 ‘이재수의 난’이라고 알려진 사건 때문에 천주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곳인데 지금은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졌고 그동안 많은 신부가 애쓴 결과겠지만, 천주교에 대한 느낌이랄까 좋은 인상을 많이 갖고 계셔서 20년 가까이 사목하면서 그런 점에서는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주는 역사적으로 볼 때 아픔이 많은 섬입니다. 역사의 아픔을 겪었던 제주도민의 가슴속으로 주교님이 많이 다가가셨습니다. 사목적 행보를 돌아보신다면요.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위 4ㆍ3 사태와 관련해서 진상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제주도민은 대한민국 국민의 1%가 조금 넘는데 99%가 1%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제주에 와서 그런 사정을 알고 ‘국가가 국민들에게 해선 안 될 짓을 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제주 역사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국민은 국가를 어떻게 잘 주시하고 감시하고, 때로는 우리 의사를 강하게 표현하면서 국가가 제 갈 길을 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사목자로서 어떻게 갈등의 구조를 화해시키고 통합시키셨습니까.

“오늘 벌어지는 일 속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이들, 그런 분들 곁에 교회가 다가가는 것이 최선의 접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회가 서야 할 자리는 예수님이 그러신 것처럼 가장 작은 사람 옆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은 어떻게 보시는지, 종교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특별히 존중받고 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권리, 인간으로서 품위와 존엄성을 훼손당하지 않고 충분히 발휘하고 존중받으면서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은퇴 후 어떻게 시간을 보낼 계획이십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계획해서 된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하느님이 앞에 깔아주시는 길을 따라갔을 따름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길을 마련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라도 기쁘게 달려가 제가 아는 한,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만큼 기쁘게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정리=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