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이 신앙의 기쁨 누리도록 돕고 사제단과 소통하며 공동 합의해 나가겠다

(가톨릭평화신문)
▲ 착좌식 후 일주일 만에 만난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는 다양한 사목 방안을 전하며 “모든 일은 사제와 교우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함께 해나갈 것”이라면서 “사제단과 교우들 중간에 있는 책임감 있는 아버지로서의 역하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제8대 춘천교구장에 착좌한 김주영 주교는 지난해 11월 21일 교구장 주교로 임명된 뒤 6일 착좌 전까지 한 달 반 동안, 커다란 하느님의 뜻을 매일같이 눈물로 순명하며 ‘받아들이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착좌 후 일주일 만인 15일 다시 만난 김 주교는 그 사이 긴장감 짙게 배었던 모습을 털고, 어느새 춘천교구의 청사진을 촘촘하게 그려놓고 있었다. “멀리 서울에서 오느라 힘드셨겠다”, “우리 악수하자”며 먼저 넉넉한 웃음으로 손을 내밀며 맞이한 김주영 주교를 춘천교구청 주교 집무실에서 만났다. 교구의 새 사목 방향과 현안 등 2시간 인터뷰 내내 미소를 머금고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는 모습이 집무실 가득 온기를 선사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춘천교구 출신 첫 교구장 주교

김주영 주교는 올해 설정 82주년을 맞은 춘천교구 역사에서 첫 교구 출신 교구장 주교가 됐다. 한국 교회 현직 주교단 중에서도 가장 젊다. 교구 117명 사제단 중에선 사제 수품 순으로 꼭 중간에 위치한다. 1997년 수품 뒤 지금까지 24년 동안 사제로 살아온 시간만큼 앞으로 교구장 주교로서 춘천교구를 이끌게 됐다.

“처음 임명 소식을 듣고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주교직을 받아들이는 시간 동안 그렇게 눈물이 흘렀던 이유는, 일단 주교라는 자리가 외롭잖아요. 늘 무엇인가 큰 결정을 해야 하고,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김운회 주교님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특별히 선종하신 장익 주교님께서 계셨더라면 ‘이 우둔한 제게 평생 갖고 갈 한 말씀 주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컸고요. 그간 잘못한 것도 많고, 신자분들 마음 아프게 한 일도 많았기에 복합적인 감정이 계속 일었던 것 같습니다.”



거룩했던 비대면 착좌식

6일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된 김주영 주교의 주교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에는 전국 교구의 주교단 7명과 교구 대표 사제단과 신자 40여 명만 함께했다. 보건 위기로 주교 착좌식이 사실상 비대면으로 진행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착좌식 날짜를 옮기는 이야기까지 거론됐었습니다. 모든 주교님을 모시지 못해 죄송함이 컸지만, 거룩한 전례에 오롯이 임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생중계를 잘해 주신 덕에 더 많은 분이 함께하셨고, 미국에 계신 저희 부모님께서도 생중계를 보시며 기도로 함께해주셨습니다. 방송국 측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도 김 주교는 “그보다 12월 말 김운회 주교님 퇴임 감사 미사 때 많은 분을 모시지 못한 것이 더 마음에 걸린다”며 “사제 성화의 날 즈음 교구 사제단이 주교님을 다시 찾아뵈려 한다”면서 전임 교구장의 마음을 더 헤아렸다.


▲ 지난 6일 교구장 착좌식 후 김주영 주교가 사제단과 신학생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소통과 만남의 사목

김 주교는 교구를 위한 다양한 사목 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새 신자들을 위해 세례성사 후에도 3~5년 동안 신앙에 맛 들일 ‘신앙생활 체득 과정’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 주교는 “새 신자 교육은 신앙생활 교육이 돼야 한다”며 “앞으로 성당 문을 두드리는 모든 분께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깊고, 길게 체득하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종의 규정을 만들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 주교는 ‘1박 2일 사목 방문’ 구상도 전했다. 경기 가평ㆍ포천부터 강원 영북ㆍ영동 지역에 넓게 자리한 62곳에 이르는 본당 사목 방문 시 최소 1박 2일 일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작은 본당이라도 1박 2일 동안 머물며 신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단체별로도 만나고, 성당 옆 기관도 방문하며 각기 다른 환경에 있는 본당들의 비전을 나누는 ‘만남의 사목’을 해보려 합니다. 매달 한두 곳씩, 1년 12곳. 5년이면 교구 모든 본당을 사목 방문할 수 있겠네요.”

아울러 김 주교는 교구장 사목 교서도 해마다 내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주교는 “사제들이 교우들과 본당 안에서 좋은 사목을 일궈가려면 1년이란 시간은 짧게 느껴지곤 한다”며 “3~5년마다 한 번씩 큰 주제로 방향 설정을 하고, 좋은 것은 계승하면서 발전하는 방식으로 해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주교는 “모든 일은 사제단과 토론하고 소통하며 공동 합의 하에 해나갈 것”이라며 “사목에서 가장 핵심이 신앙생활의 근간인 ‘말씀’이라면, 교구 운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합의’”라고 말했다. 현재 교구 사제인사를 앞두고 사제들과 면담을 해오고 있는 김 주교는 “많은 신부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면서 제가 생각지 못한 조언을 해주실 때면 모두 적어두고 있다”고 했다. 김운회 주교가 때마다 산과 계곡에서 젊은 사제들과 약주 기울이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온 전통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교구 역사와 열린 교회를 향하여

김 주교는 열린 교구,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오랫동안 교구 교회사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교구 사료 보존과 교회사 가치 전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주교는 “춘천교구청 옆에 위치한 등록문화재 ‘옛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춘천 수련소’를 전시관으로 꾸며 신자와 지역민이 가톨릭 정신을 익히고 되새기는 열린 공간으로 삼고 싶다”며 “포천에 광암 이벽 선생을 위한 사업 등 전시관과 박물관을 조성해 선조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교회사 연구의 목적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또 한국전쟁 때 순교한 이광재 신부와 고안토니오 신부, 라파트리치오 신부 등 근현대 신앙인들의 넋을 기리는 순례도 장려할 계획이다.



북녘 동포 위한 사목은 계속

김 주교의 주교 문장에는 ‘하나됨’과 ‘평화’가 새겨져 있다. 남북으로 분단된 춘천교구가 평화로 하나 되길 기원하는 뜻을 넘어, 모두가 주님 안에 평화와 일치를 이루길 염원하는 뜻이 담겼다. “나 자신의 평화가 곧 가정의 평화를 가져오고, 나아가 그것이 우리 사회를 평화롭게 한다면, 이념을 달리하는 같은 민족과도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겠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는 길도 인정이 바탕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하나가 되려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함흥교구 사제 배출과 신학생 양성, 한솥밥한식구 운동, 새터민 지원 등 북녘 동포를 위한 사목도 계속 전개한다.



코로나19와 사회 현실

김 주교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께서 이러한 시기를 왜 주셨는지 깊이 돌아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어르신 세 분이 이 위기 중에 교무금을 내러 가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교구의 어려움을 염려해주시는 신자 여러분께 무척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성경 말씀에 비춰 나와 우리 사회, 교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 삶이 너무 소비주의로 치닫진 않는지, 온갖 성장이 우리에게 참 행복을 주는지 말입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난한 이웃과 더욱 나누는 것이 인류의 성장과 발전 아니겠습니까. 돈, 집, 주식…. 모두 인간이 만든 거잖아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사랑과 평화의 가치에 더 눈을 떠가면 좋겠습니다.”



전임 교구장들의 목장과 주교복 물려받아

김 주교는 교구장 직무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주교복은 전임 교구장 김운회 주교의 것을, 주교 목장(지팡이)은 장익 주교가 사용했던 것이다. 앞선 두 주교의 영성과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계승해 나아가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소박함과 검소함 속에 살아온 두 전임 주교 모습을 닮아 평소에도 선물 받은 옷이나 물건이 있으면 주변에 나눠줬던 김 주교는 착좌 기념 선물도 따로 제작하지 않았다. 대신 1997년 교구 한삶위원회가 북녘 동포와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의미로 제작한 ‘한삶 수건’을 만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저는 교구 사제단의 일원이며, 좀더 무거운 자리에 있게 된 것뿐입니다. 모든 일은 사제, 교우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계획을 세워나갈 것이고, ‘제 생각에 따라오십시오’ 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다재다능한 신부님들, 열심한 교구민들과 아름다운 하느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도와주시고 기도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감 어린 고동색 개량한복 위로 김주영 주교의 미소가 따스한 햇살과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