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모든 사람은 교회의 구성원

(가톨릭평화신문)
▲ 프란치스코 성인은 온 세상이 교회라고 가르쳤다.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난민들을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13. 프란치스코의 교회관과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체들의 모임 - 형제공동체

프란치스코는 「권고 말씀」 2번에서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열매는 “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존재들을 관계성 안에서 보지 않고 자신만의 중요성과 자신 외에 모든 존재를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다른 존재들과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려는 가짜 자아인 에고의 허상일 뿐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것을 에고와 악마의 허상 혹은 꾐이라는 의식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 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대로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함’의 실체인지 모른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의식 없는 생각과 행동이 밀약(야합)을 하게 될 때, 이것이 바로 집단 따돌림이나 다른 모든 범죄 혹은 독재 억압과 인권유린, 전쟁과 같은 사회병리 현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자그마한 무의식적 생각들을 의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함께 이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철학이나 도덕적 가르침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여전히 많은 가톨릭 신자마저도 쪼개어진 이원주의적 세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태 우리보다 열등하고 별로 가치 없다고 여기는 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신성한 이미지를 보지 않으려 했는지 모른다.

여기에는 단순히 죄인들이나 우리가 꺼리는 이들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이득을 위해 오용하는 피조물과 우리의 공동 가정인 지구도 포함된다. 존재의 위대한 사슬이라는 의식이 끊어지고 난 이후 우리는 다른 피조물들 안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이미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 후 오래지 않아 우리 인간은 계몽주의와 현대의 세속주의를 통해 하느님(생명)마저 거부하는 문화(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말하는 ‘죽음의 문화’)를 창조(?)해 내고 있다. 존재들의 사슬이 산산이 부수어지고 만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1221년 수도 규칙」 22장에서 교회의 구성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톨릭적이고 사도적인 거룩한 교회 안에서 주 하느님을 섬기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 교회에서 품을 받은 모든 이들, 곧 사제들, 부제들, 차부제들, 시종들, 구마자들, 독서자들, 수문자들과 모든 성직자 그리고 모든 남녀 수도자, 모든 소년, 모든 어린이, 가난한 이들과 빈궁한 이들, 왕들과 왕자들, 노동자들과 농부들, 종들과 주인들, 모든 동정녀, 금욕하는 여인들과 부인들, 평신도들과 남성들과 여성들, 모든 유아, 청소년들, 청년들과 노인들, 건강한 이들과 아픈 이들, 모든 왜소한 이들과 건장한 이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이들, 세상 어디서나 현재 있고 앞으로 있을 모든 국가와 모든 사람 ….” 이 내용을 보면 프란치스코는 이미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함으로 창조된 모든 사람을 하느님 백성, 곧 교회의 구성원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서 「함께 꿈을 꿉시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Let Us Dream: The Path to a Better Future)」에서 우리가 개인적인 해방은 물론이고 불의하고 유해한 제도로부터의 공동의 해방이 둘 다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불행히도 많은 이가 구원이라는 것을 단순히 저세상을 향한 개인적 탈출 정도라고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절대 해방된 사람들이나 건강한 체제를 창출해내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 모든 코로나 사태 즉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정체 상황’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적 자유의 결핍, 우리가 섬겨온 우상들, 우리가 믿고 살아온 이념들(이데올로기들), 우리가 소홀히 해온 관계성들….”

사람들 대부분은 진정한 현실을 보려 하지 않은 채 무의식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이 자유롭고 의식적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몽유병 환자들처럼 삶을 겉돌면서 살아가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참으로 변모할 수 있는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부처님과 같은 영적인 스승들이 “깨어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에고 혹은 자그만 자아가 우리를 통제한다면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때 우리는 그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호불호에 따라 선호하는 것에 의해 명령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 것과 우리가 정말로 모든 것을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고 믿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정말로 해방일까?

우리가 관상적 기도의 삶을 충실히 살고 위대한 사랑과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경험하면서 하느님께서 변모시키도록 한다면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본래의 연결성을 깨달을 것이고, 결국은 우리가 하느님을 포함하여 다른 어떤 존재나 다른 사람들과는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참으로 해방되는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교회는 세상 전체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비록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소유 방식으로 소유하지 않으시지만,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