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빈 평화칼럼] 한반도 평화 ‘교황 찬스’

(가톨릭평화신문)


임기 말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에 ‘올인’하고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지난 7월 6일 정보기관 수장인 박지원 국정원장이 성당 미사에 참여해 “교황의 방북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이후 진전 상황에 대해 정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교황의 방북’ 논의는 3년 전인 2018년 10월,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교황에게 전달한 이후 시작됐다. 실제로 당시 교황청과 북한은 ‘교황 방북’을 위한 소통 채널을 가동했다. 교황청 산하 자선 단체인 산 에지디오가 평양을 방문했고 북한 외교관이 로마에서 열린 산 에지디오 행사에 참석했다. 이탈리아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며 북한은 로마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주재원을 파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 때문이었을까? 교황은 2019년 1월 “한반도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면서 교황의 방북은 무산됐다. 하지만 올 1월 미국에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황 방북의 불씨는 다시 살아났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상당히 유연하고 역동적이다. 엄격한 상호주의와 선(先) 북핵 위험감소, 대북 제재의 전략적 운용과 다자적 국제협력 강화로 요약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과 6월 미국과 유럽 순방에서 여러 차례 “교황 방북의 그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방북 의사를 굳히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지난 8월 2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봉헌된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미사에서 교황청 성직자성장관 유흥식 대주교는 교황이 “북한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두 번이나 강조한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잘 준비하길 바란다”는 교황의 메시지도 전했다. 앞서 8월 16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00주년 기념 ‘남북 평화의 날’ 영상 축사에서 “교황의 방북이 조만간 이뤄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북이 성사된다면 “북녘땅에 평화의 복된 씨앗이 심기고 지구촌에 화해와 참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9월과 10월에는 ‘교황 방북’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국제적 외교 무대가 펼쳐진다. 우선, 17일은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30주년이다. 또 19일은 ‘9·19 평양 공동선언 3주년’이다. 당시 남북 정상은 평양에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다음날인 20일은 3년 전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 ‘교황 방북 초청’을 약속한 바로 ‘그 날’이다. 이어 21일에는 제76차 유엔총회가 시작된다. 또 10월 말에는 로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과 교황이 만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중대 논의를 할 예정이다.

이제 ‘교황 방북’의 관건은 북한에 달려 있다. 바로 ‘북한의 초청장’이다. 다행히 한미연합훈련을 비판하며 남북 통신선을 단절한 북한은 훈련이 끝난 뒤 대남, 대미 강경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교황의 평양 방문은 미국 주도의 대북 경제 제재와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으로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교황의 모든 행보는 이념과 국가, 심지어 종교까지도 뛰어넘는다. 가난과 차별, 분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조건 없이 달려간다. 침묵의 북한 교회지만 북녘땅에도 신앙을 같이하는 형제자매들이 있는 한 교황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그곳에 갈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