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준의 병적 징후] 누구를 위한 원격 재활치료인가

(가톨릭평화신문)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들은 주로 ‘원격’ ‘비대면’ ‘언택트’ ‘디지털’ 같은 수식어다. 이런 키워드의 공통점은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서비스나 인간생활의 상당 부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주로 편의성이라는 점이 강조됐지만, 실제 도입은 비용과 시간의 절감을 위한 것이다. 비용절감으로 산업현장의 효율성은 올라가고 유통구조가 빨라졌다. 하지만 온라인 택배거래가 늘면서 물류비용이 줄어들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높은 소매점들이 없어지고 동네상권이 붕괴했다.

우리는 디지털기술 발전을 사회적으로 적용하면서 그 부작용에 대해 목도해 왔다. N번방 같은 디지털범죄를 떠올리지 않아도 CCTV와 블랙박스, 디지털화된 개인정보들의 유출 및 악용의 용이성도 심심찮게 겪었다. 전산화된 각종 정보는 너무나 손쉽게 유통되고 디지털화폐는 손쉬운 거래와 관리 감독이 없어 젊은이들의 투기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전대미문의 감염병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디지털화’는 경향성에서 칭송과 가속화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과학기술발전과 사회적 이익에 대한 고려는 찬성할 일지만, 부작용과 이로부터 발생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점검은 부족하다.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강조되는 디지털화는 사람과 사람의 접촉점을 줄이는 데 내용이 집중된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규정하는 것인데 말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신종감염병 시기에 개개인의 접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비극이 필수적이고 향후에도 지속한다는 전제이다.

실제 코로나 팬데믹은 여러 디지털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학교 원격교육의 문제에서는 또래끼리 협동하고 다투고 어울리는 과정이 생략되고, 선생님과 직접 만나는 과정이 축소되면서 단순지식 전달과정만 남았다. 실제로 언어능력, 정서발달 등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는 연구보고가 나온다. 사회서비스영역에서도 홀몸노인 방문이나, 복지관 등의 모임이 없어지고 장애인 이동보조가 줄고 전화통화에 의존하면서 활동성 저하 및 인지능력 저하가 발견된다. 의료 부분에서도 비대면 진료 및 투약 반복으로 만성질환자들의 건강상태가 나빠진다.

그런데 이런 나빠지는 과정이 모두 비슷하지는 않다. 공교육이 원격으로 바뀌면서 사교육이 운동, 학생 분석, 심리상담, 또래 모임까지 책임진다. 또래 내 학력 격차는 유례없이 커졌을 것이다. 여유가 있는 고령층은 여전히 골프를 치거나 대면 모임, 야외운동을 한다.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환자들은 대면진료도 지속하고, 만성질환도 의사를 만나 상담받는다. 거꾸로 홀몸노인, 장애인, 저소득층은 더욱 사각지대에 몰려있다. 스스로 관리하지 않는 환자들의 만성질환도 악화된다.

최근 정부 발표를 보면 재활치료도 원격으로 하겠다는데,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원격재활은 돈 있고 시간 있는 환자들이 선호할 리 없는 건 당연해 보인다. 결국 ‘디지털화’라는 가치 중립적 기술발전이 실제로 적용되면 불평등이 가속화될 건 불 보듯 뻔하다. 디지털화가 기존 대면서비스들의 축소로 나타나면, 상당수는 어쩔 수 없이 비대면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화 논의는 이 때문인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부터 논의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한국은 가장 빠른 고령화 시기를 맞이한다. 사회적 돌봄이 더욱 강조되는 시점에 ‘스마트 말벗기계’ ‘AI 로봇’ ‘원격재활치료’ 등을 도입하겠다는 정부발표는 황당하다. 코로나19 시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손길이고, 인간의 돌봄이다. 돌봄까지 디지털화할 수 있다는 망상부터 일단 버리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