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신앙살이] (486) 타이어 펑크 사건

(가톨릭신문)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어느 수도회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신부님은 몇 달 전에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테네오 대학에 초빙 교수로 가서,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나와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고, 나는 그 신부님으로부터 필리핀 생활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신부님은 인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마닐라에서 지내는 동안 자기네 수도회 양성소에서 묵었답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강의하러 갈 때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형제들이 동행해서 학교까지 갔었고, 심지어 형제들은 신부님 강의를 신청하기도 했답니다. 또 형제들은 강의가 끝난 후에는 수도원까지 신부님과 동행했기에, 마닐라 생활을 하는 동안 형제애 속에서 지낼 수 있었답니다.

강의 시간은 오전에 2시간, 오후에 2시간이었고, 점심식사는 학교 식당에서 했답니다. 17명의 수강생이 있었는데, 처음 몇 주 동안 서로가 서먹해서 그랬는지, 점심식사를 식당에서 따로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사람 한 사람씩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더니, 시간이 좀 지나서는 식탁을 붙여서 17명이 함께 식사를 했었답니다. 마음이 열리니 서로에 대한 건강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식탁이 곧 나눔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수도원 수사님은 자기네 공동체에서 자란 바나나를 간식으로 가져와 나누었고, 어떤 수녀님은 간식으로 한국 과자를 나누었고, 또 다른 분은 많은 양의 ‘비빔밥’이나 ‘제육볶음’을 만들어 와서 함께 나누어 먹었답니다. 그 밖에 다른 수강생들은 자신들이 묵고 있는 기숙사나 공동체서 싸 주는 점심 도시락을 가져왔는데, 그것 또한 나누며 먹었기에 강의 보다 식사 시간이 더 행복한 시간이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바쁜 일이 있어서 수도원 승합차를 가지고 왔고, 강의 후 신부님과 동료 수사님들은 급히 수도원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타려는데 왼쪽 앞바퀴 타이어의 바람이 다 빠져있었답니다. 한국에서라면 자동차 보험이 잘 되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마닐라 상황은 그렇지 않았답니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라 보험회사에 전화했더니 전화도 안 되고, 가까스로 전화가 연결됐는데 차를 가지러 갈 수 없으니 직접 가지고 올 수 있으면 오라는 말만 했답니다. 신부님과 수사님들은 자동차 정비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발발 동동 굴렀답니다.

그래도 수사님들은 영어로 된 차량 사용 설명서를 읽고 뭔가를 시도했지만, 자동차 몸체를 올리는 장비도, 그 밖의 여러 가지 도구들 또한 없었답니다. 수도원에 급히 가야 했지만, 전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낙담만 하고 있을 때, 함께 공부하는 학생으로 그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다른 수도회 수사님이 지나가다가 이 장면을 보았답니다.

그러자 그 수사님은 달려와서 마치 자기 일처럼 도울 방안을 궁리하다가, 그 대학 기계실로 달려가서 자동차를 손볼 수 있는 분을 찾았답니다. 그런 다음 자동차 기사 분과 함께 연장을 가지고 달려와서, 모두가 다 함께 합심해 펑크가 난 타이어를 임시 타이어로 교체했답니다. 그렇게 교체가 끝나자 모든 수사님들이 서로 기쁨에 겨워 악수를 하며 감사 인사를 나누었답니다. 순간,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다 같은 수도회인양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다는 마음에 뿌듯함을 간직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이 내게 말하기를 사는 동안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우리를 당황시키지만, 평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 그 모든 일의 결말은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이 된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평소 사람과 사람이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은총임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