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사제수품 70·60·50·25주년 합동 축하식

(가톨릭신문)
서울대교구는 6월 19일 오후 2시30분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사제수품 70·60·50주년 축하 미사를 봉헌하고 수품 70주년을 맞는 최익철 신부, 60주년을 맞는 유재국 신부, 50주년을 맞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임덕일·박용일·김충수 신부의 축하식을 연다. 또 수품 25주년을 맞는 25명의 신부들을 위한 축하 자리도 마련한다.

올해 금경축을 맞는 염 추기경은 1970년 12월 8일 사제품을 받았으며 서울 불광동본당 보좌로 사목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1973년 5월 소신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같은해 12월 소신학교 영성지도 및 재경담당을 역임했다.

이후 서울 이태원·장위동·영등포동본당 주임으로 사목을 펼쳤으며, 1987년 대신학교 사무처장을 거쳐 1992년 10월 교구 사무처장을 지냈다. 이후 2002년 1월 25일 주교품을 받고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됐으며 다음달인 6월 25일 교구장으로 착좌했다. 6년 전인 2014년 2월 22일 한국교회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평생 자신을 낮추며 주어진 소명을 묵묵히 실천해 온 염 추기경이 정한 사목 표어는 “아멘. 오소서, 주님 예수님!”(묵시 22,20)이다. 사제 수품 성구이기도 하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다.

염 추기경은 당시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곧 가겠다’고 약속하셨다”며 “교회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고 응답하면 주님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1950년 11월 21일 사제품을 받은 최익철 신부는 황해도 사리원본당 주임으로 사목을 시작했으며 이후 1953년 5월 성신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한 뒤 1995년 5월 벨기에 루뱅대학으로 해외유학을 떠났다. 이후 서울 이문동·가회동·금호동·오류동·해방촌·세종로본당 등에서 사목한 뒤 서울 마천동본당을 끝으로 1998년 10월 은퇴했다.



유재국 신부는 1960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았으며, 1962년 2월 파리 가톨릭대학교 교리사목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부산 서면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마산교구 창원 월남동본당·서울 응암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1972년 5월 가톨릭교리신학원 교수 겸 가톨릭대학 신학부(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지도신부를 역임했다. 이후 서울 청담동·세종로·불광동·공항동본당 등에서 주임으로 사목을 펼친 뒤 2007년 9월 사목 일선에서 은퇴했다.

한편 염 추기경과 함께 사제수품 50주년을 맞은 김충수 신부는 서울 후암동·도림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가좌동(현 가재울)본당 초대 주임으로 사목했다. 이후에도 서울 문정동·신대방동·문정2동본당 초대 주임을 지냈으며, 여의도동·암사동본당에서 사목한 뒤 2013년 8월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기도 했다.

박용일 신부는 서울 주교좌명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명수대(현 흑석동)본당 보좌를 거쳐 1978년 미국에서 교포사목을 했다. 이후 서울 미아3동(현 미아동)·중곡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1999년 다시 교포사목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2002년 10월부터 2010년 2월까지 평화신문 미주지사 사장을 겸했으며 2012년 8월 은퇴했다.



임덕일 신부는 서울 세종로본당 보좌로 사목했으며, 이후 서울 시흥동·사당동본당 주임으로 사목을 펼쳤다. 1983년 3월 교구 꾸르실료 지도신부를 겸임했으며, 이후 오류동·청담동·노원·장안동·방배동본당 주임신부로서 사목을 펼쳤다. 2008년 9월부터 꾸르실료 담당 사제를 마지막으로 역임한 뒤 2015년 9월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