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교황 칙서 첫 ‘한글 필사본’ 발견

(가톨릭평화신문)
▲ 라틴어로 된 교황 칙서를 우리말로 옮긴 첫 교황 문서 「비오쥬교」 표지.



베르뇌 주교 지시로 비오 9세 교황 회칙 한글 번역 교황청에 보내



라틴어로 된 교황 칙서를 처음으로 우리말로 옮긴 ‘한글 필사본’이 발견됐다.

「비오쥬교」라는 제목으로 바티칸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한글 필사본’을 동서 교류 문헌을 연구하는 곽문석(안양대 HK+사업단) 교수가 찾아내 1일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주최한 조선대목구 설정 19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공개했다.

바티칸도서관(Biblioteca Aposto lica Vaticana) Sire.L.13으로 분류된 「비오쥬교」는 비오 9세 교황(재임 1846 ~1878)이 1854년 12월 8일에 반포한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으로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오쥬교」는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가 지시하고 인준한 책으로 1860년에서 1863년 사이에 라틴말을 번역한 첫 우리말 교황 문서이다. 「비오쥬교」는 서문 1쪽, 본문 52쪽, 결문 1쪽 등 총 54쪽으로 구성돼 있으며 가로 21㎝, 세로 28.5㎝ 크기이다. 그리고 쪽마다 화려하게 채색된 꽃으로 꾸며져 있다.

「비오쥬교」 서문에는 라틴어로 “우리의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 비오 9세 교황 성하께서 거룩하신 동정녀의 원죄 없는 잉태의 신비를 신앙의 교의로 선포하신 칙서를 생 쉴피스 신학교 교장인 시르 몬시뇰 요청에 따라 르 퓌 교구장 주교를 통해 비오 9세 교황 성하께 바치기 위해 조선말로 옮긴 번역문이다. 1863년 11월 25일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작성, 이를 검토해 인준함. 갑사의 주교 조선대목구장 시메옹 베르뇌”라는 글이 쓰여있고 베르뇌 주교 인장이 찍혀 있다. 시르 몬시뇰은 프랑스 르 퓌 교구장 주교의 지원 아래 1860년부터 비오 9세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400개 언어로 번역해 교황청에 보내는 작업을 했다.

결문에는 “1866년 3월 8일, 11일, 30일에 순교한 선교사들을 대신하기 위해 파견될 예정인 세 명의 선교사들이 나의 요청에 따라 1867년 주님 공현 대축일에 생 쉴피스의 내 방에서 다음과 같이 서명했다. 뤼송교구 출신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알렉상드르 제레미 마르티노, 뤼송교구 출신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의젠 리샤르, 리옹교구 출신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귀스타브 블랑”이라고 적힌 시르 몬시뇰의 라틴어 첨언이 적혀 있다.

베르뇌 주교는 1863년 11월 7일 프랑클레 신부에게 보낸 편지와 같은 해 11월 18일 베롤 주교에게 보낸 편지, 또 11월 24일 알브랑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오 9세 교황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조선어로 옮겨 교황청으로 보낸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베르뇌 주교가 편지에서 염려했던 것처럼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었다.

158년 만에 찾은 「비오쥬교」의 학문적 가치는 벌써 ‘국보급’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첫째, 라틴어로 된 교황 문서를 처음으로 한글로 옮겼다는 데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문서학서를 우리말로 옮긴 ‘언해본’들이 전부였는데 라틴어 교황 문서를 박해 시기에 옮겨 교황청으로 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둘째, 19세기 중반 우리말과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비오 9세 교황에 대해 ‘주교’와 ‘교종’이란 말을 혼용하고 있어 당시 교회 용어에 관한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셋째, 박해 시기 한국 교회의 인쇄술에 관한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이다.

올해 5월 21일 바티칸도서관 사이트에서 「비오쥬교」를 처음으로 찾아낸 곽문석 교수는 “교황 칙서를 우리말로 필사해 바티칸이 소장하고 있는 유일한 필사본”이라며 “앞으로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협력해 바티칸도서관에 정식으로 원본에 대한 복사 영인본을 구할 계획이며 곧 이에 관한 학술 발표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곽문석 교수와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조한건 신부, 한국학중앙연구원 조현범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서원모 교수가 공동으로「비오쥬교」 편역주 출판을 위해 연구하고 있다.

한편, 조한건 신부는 “최양업 신부가 「비오쥬교」 우리말 역자일 개연성이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조 신부는 “「비오쥬교」 우리말 역자는 최양업 신부 아니면 다블뤼 주교일 가능성이 크다”며 “최양업 신부가 1861년 6월에 선종했으니 시르 신부의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조선어 번역 요청서가 언제 조선에 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번역자를 찾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