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다시 외친 대구 신학생들의 만세

(가톨릭평화신문)
▲ 대구가톨릭대 3·5 만세 운동 기념 작은 음악회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100년 전 성유스티노신학교 학생들의 숭고한 애국 정신을 기리고 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제공



대구가톨릭대(총장 김정우 신부)는 5일 대구 남산동 유스티노캠퍼스 성 유스티노 성당에서 ‘3ㆍ5 만세 운동’ 기념행사를 열고 100년 전 성 유스티노 신학생들의 대구ㆍ경북 최초의 만세 운동 정신을 기렸다.

유스티노캠퍼스 강당에서 열린 ‘3ㆍ1 운동과 대구대교구’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서는 일제 강점기 대구대교구가 지역사회와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재조명했다.

‘국채보상운동의 성격과 3ㆍ1 운동’을 주제 발표한 이경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는 “3ㆍ1 운동 못지않게 전 국민이 하나 된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하고 주도한 분이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회장”이라며 “수많은 서민계층이 참여한 국채보상운동은 경제적 국권수호운동으로 3ㆍ1 운동의 바탕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정숙 영남대 교수는 ‘대구 평신도들의 항일 운동’ 주제 발표에서 “서상돈의 국채보상운동 정신은 김하정ㆍ김찬수 등의 3ㆍ1 운동과 해성청년회의 애국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왜관본당의 정행국 형제는 항일 교육운동을 펼치고, 전교회장 정준수는 천주교 항일 무장단체 의민단 투쟁을 이끌며 중국 천주교 교우촌을 건립했다”며 “이들 집안은 각기 십여 명이 넘는 사제ㆍ수도 성소자를 배출했고 각 본당에는 청년회를 중심으로 항일 독립운동이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영남교회사연구소장 김태형 신부는 성 유스티노 신학생들이 전개한 만세 운동 과정과 3ㆍ1 운동에 대한 선교사들의 태도를 집중 조명했다. 김 신부는 “3ㆍ1 운동 당시 성 유스티노 신학생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낸 후 9일 대구 약전골목 만세 행렬 합류를 만장일치로 가결했으나 신학생들의 만세 운동 참가는 샤르즈뵈프 교장 신부의 만류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한국 교회를 이끌었던 프랑스 선교사들은 철저한 정교 분리 원칙으로 한국민의 현실적 고통과 독립운동을 외면했지만,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만세 운동은 민중들의 아픔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신학생들의 고귀한 정신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열린 3ㆍ5 만세 100주년 작은 음악회에서는 신학생들과 참가자들이 ‘기미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삼일절 노래’와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