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어떤 종류의 인종차별도 반대한다”

(가톨릭평화신문)
 
▲ 미국 엘파소교구장 마크 세이츠 주교(가운데)와 사제들이 1일 시내 공원에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플로이드가 목이 눌린 8분 46초 동안 기도하며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CNS】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일 “인종차별이나 인종주의에 대해 눈을 감거나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면서 “인간 생명의 존엄을 수호하는 데 함께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지 플로이드를 비롯해 미국에서 인종차별로 목숨을 잃은 모든 이의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며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도 기도하기를 요청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는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중에 숨졌다. 경찰은 플로이드를 길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무릎으로 목을 눌렀다. “숨을 쉴 수 없다” “살려달라”는 플로이드의 호소에도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8분 넘게 목을 짓눌렀다. 경찰에게 목이 눌려 플로이드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의 무력행사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다. 플로이드가 백인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어서다.

미국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플로이드의 죽음에 일제히 애도를 표하며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문화를 규탄했다. 미국 주교회의는 5월 29일 성명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우리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솟구쳤다”며 “인종차별은 생명과 관련한 문제이지 잠시 관심을 끌다 잊히는 정치적 이슈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사랑이고 자비이며 정의이신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러한 잔학 행위에 눈을 감고 있을 수 없다”면서 가톨릭교회가 생명의 존엄을 짓밟는 인종차별에 침묵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으로 흑인 사회의 분노가 일시에 터지면서 미국 여러 도시에선 폭력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일부 흑인들은 경찰서를 습격하고, 상점을 털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단체와 대다수 시민은 평화 시위를 이어갔다.

미국 엘파소교구장 마크 세이츠 주교와 사제들은 1일 시내 공원에서 침묵 기도로 시위에 동참했다.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플로이드가 목이 눌린 8분 46초 동안 기도하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일 세이츠 주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와 지지의 뜻을 전했다. 세이츠 주교는 “교황께선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우리의 기도에 함께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플로이드 사건은 흑인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유색인종과 이주민, 외국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인종주의에 대한 성찰로도 확대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한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있다.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연대를 통해 인종차별과 인종주의, 민족적 증오에서 벗어나기를 강조해 왔다.(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인종주와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그와 관련된 불용에 반대하는 세계 회의에 보내는 기고’ 참조)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 장관 피터 턱슨 추기경은 5일 미국 조지타운대 대학이 인종차별을 주제로 개최한 화상 회의에 참여해 “인종차별은 하느님께서 모든 백성에게 요청하신 형제애를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턱슨 추기경은 형제간 살해를 다룬 창세기 카인과 아벨의 일화를 예로 들며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와 용서로 형제애를 이끄는 주님을 따르기를 당부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