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매캐릭 보고서’ 발표, 성 추문 진상 밝혀

(가톨릭평화신문)
▲ 교황청이 발표한 성 추문 문제 전말이 담긴 ‘매캐릭 보고서’의 주인공 미국의 테오도르 매캐릭 전 추기경. 【CNS】



성 추문으로 추기경직은 물론 사제직마저 박탈당한 미국의 테오도르 매캐릭 전 추기경에 관한 진상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이른바 ‘매캐릭 보고서’다.

교황청 국무원은 10일 ‘테오도르 매캐릭 전 추기경과 관련한 교황청 조사 및 의사결정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450쪽에 달하는 보고서는 1970년대 사제 신분으로 남학생에게 성적 괴롭힘을 가하고, 주교 시절이던 1980~1990년대에도 신학생과 학생들에게 가한 성범죄 행위의 전말을 담고 있다.

교황청이 성직자의 성비위 사실을 직접 조사해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2년여에 걸쳐 이뤄진 이번 진상 조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시로 이뤄졌다. 그만큼 성직자 성 추문을 투명하게 공개해 뿌리 뽑고, 진정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황의 의지가 담겼다.

매캐릭 전 추기경에 관한 부적절한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보고서에 담긴 1970년대 피해자 부모의 진술에 의하면, 매캐릭 당시 신부는 어린 자녀를 자주 찾아왔고 따로 챙기면서 신체적 접촉을 하기 시작했다. 한 사제가 가정 방문을 자주 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점점 자녀를 대하는 사제의 행동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 이미 이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지만, 매캐릭 신부는 1977년 뉴욕대교구 보좌주교에, 2000년에는 워싱턴대교구장에 임명됐고, 2001년에는 추기경에 서임됐다. 2017년에 다시 한 남성의 증언으로 그의 성 추문 사실이 교황청에 보고됐으며, 이듬해 그는 추기경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엔 교회 재판을 통해 유죄가 선고되면서 성직자 신분을 상실하게 됐다.

‘매캐릭 보고서’는 신망 두터웠던 미국 교회 고위 성직자의 비위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인지도가 높았던 추기경의 부적절한 행적에 신자들은 물론 미국 사회가 충격을 받았다. 특히 교황청은 “당시 미국 교회의 보고 과정에서 교황청까지 정확한 사실이 전달되지 못했다”면서도 “교황청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매캐릭 전 추기경의 성 학대 사건이 뜬소문으로 치부되는 데 영향을 줬다”고 고백했다. 교황청도 고의적 은폐 시도는 없었지만, 사실상 과오를 인정한 것이다.

이에 교황청은 “피해자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범죄 예방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게 됐다”며 교회 내 성 문제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교황청은 진상 조사 결과를 일부가 아닌 전체를 공개하며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보고서에는 매캐릭 전 추기경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 거짓으로 결백을 호소한 부분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미국 주교회의 의장 호세 고메즈 대주교는 성명을 통해 “오랜 기간 주교와 추기경을 지낸 매캐릭에 관한 진상 조사 보고에 대해 환영하며, 교회에 더 큰 책임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교황님께 감사드린다”며 “성 학대와 관련한 모든 희생자와 가족에게 깊은 사과를 표한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 수요 일반알현 연설에서 “전임 추기경의 성 학대 사건을 다룬 매우 고통스러운 보고서가 공개됐다”며 “모든 형태의 학대 피해자들에게 저의 친밀감을 전하며 악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약속을 전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