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70) 맥캐릭 보고서, 되돌릴 수 없는 선례를 남기다 / 존 알렌 주니어

(가톨릭신문)
대학 시절 서구 문명 강의에서 한 교수가 476년 9월 4일 로마의 한 원로원 의원이 쓴 일기를 큰 소리로 읽은 적이 있다. 일기에는 이 원로원 의원이 당시 16살이었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로부터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아부했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그는 호민관이나 판사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날 서로마제국 마지막 황제였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의 반란으로 폐위됐고, 역사가들은 이날을 로마제국이 멸망했던 날로 기록하고 있다.

교수는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순간들이 역사를 바꾼다는 것을 잊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난 11월 12일 교황청이 장고 끝에 발표한 전 추기경이자 사제였던 시어도어 맥캐릭 사건에 대한 보고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 보고서는 중대한 역사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누군가 교황청이 만들어 낸 이 선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보고서는 아주 놀랄만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맥캐릭 보고서와 비견할 만한 것은 2011년 8월 17일 교황청이 1966년 면직된 성모 마리아의 하인회 소속 앤드류 로넌 신부 사건을 조사해 발표한 70여 쪽 보고서일 것이다. 1992년 죽은 로넌은 사후 미국 오리건주에서 성추행 혐의로 기소됐는데, 당시 피고는 교황청이었다.

하지만 로넌 보고서의 경우, 교황청은 피해자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사건에 대한 맥락이나 설명도 없었고, 성추행을 예방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인정도 없었다. 이 보고서는 그저 문서에 불과했고, 교황청은 잘못이 없다는 대변인의 선언만 들어있었다.

다시 말하면, 로넌 보고서는 맥캐릭 보고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맥캐릭 보고서는 제프리 레나 변호사와 그의 동료들이 연구해 작성했다. 레나 변호사는 오랫동안 미국 법정에서 교황청을 변호해 왔으며, 밀라노와 토리노에서 공부하고 가르쳐 이탈리아 사정에도 아주 밝다.

이번 맥캐릭 보고서로 생긴 일을 제대로 잘 알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서 보자. 1870년 교황청은 세속의 권력을 잃고 영적 권위만 인정받기 시작한 이후, 비밀과 주권이라는 두 핵심가치 안에서 활동해 왔다. 여기서 비밀은 추문을 막기 위해 교황청 안의 수치를 외부로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며, 주권은 교황청의 활동에 대해 구차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맥캐릭 보고서는 이 두 원칙을 깼을 뿐만 아니라 산산이 부숴버렸다.

다만, 이 보고서는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흠잡을 수 있는 빌미를 줬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또 피해자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은 이 보고서가 설명이 없는 해명으로 보고 있으며 누군가 관련된 범죄나 은폐 행위로 처벌을 받게 될 때까지 이 일은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보고서의 대부분은 혹독하게 진솔하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가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우리는 이 보고서에서 맥캐릭을 추기경으로 서임할 때 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한 아주 은밀한 조언, 성추행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증언, 교황청 의사결정권자들의 직적접인 기억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규모로 교황청이 속내를 드러내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의 교황청 권력구조는 이런 결과를 불러 일으켰고, 또 보고서 발표 시기도 지연시켰다. 우리는 2년여를 기다리며 왜 이렇게 늦어지는 지 궁금해 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상세하고 면밀한 내용의 보고서를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좀 더 기본으로 돌아가 이번 보고서가 남긴 선례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으로 쭉, 만일 교황청이 과거 혹은 현재의 추문에 관해 이 정도의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왜지? 왜 교황청은 숨기려 하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질 것이다.

만일 내가 지금은 고인이 된 멕시코의 마르시알 마시엘 데골라도 신부의 성추행 피해자라면, 지금 당장 교황청의 누가 왜 이 사실을 은폐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신학생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밑에서 교황청 재정을 담당했던 아르헨티나의 구스타보 잔체타 주교의 피해자라면, 교황이 이 사실을 언제 알았으며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맥캐릭 보고서와 같은 보고서를 요구했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런던 부동산 구입 등으로 재정 추문을 일으켰던 이탈리아의 안젤로 베추 추기경에 대한 보고서가 나올 수도 있다. 몇몇 비평가들은 베추 추기경이 이 문제로 계략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맥캐릭 보고서 수준의 조사가 이뤄진다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진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과거 고수했던 비밀과 주권이라는 원칙을 투명성과 정직성이라는 원칙으로 대체한다면, 교황청은 혹 또 다른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설득력 있는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맥캐릭 보고서는 교회 개혁을 향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뤄낸 하나의 중대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어떤 한 사건을 드러내서가 아니라 향후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투명성이라는 램프의 요정이 나왔다. 다시 말하면 이 램프의 요정을 다시 집어넣기는 굉장히 힘들 것이다.




존 알렌 주니어 (크럭스 편집장)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