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사회교리] (24)살인하지 말라는 뜻

(가톨릭평화신문)
▲ 최원오 교수

 

 


굶주린 사람들의 병, 곧 배고픔은 끔찍한 고통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겪는 최악의 질병이며, 굶어 죽는 것은 어떤 죽음보다 더 처참합니다. 굶주림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그 고통이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고픔은 몸속에 숨어든 병으로, 길게 이어지는 아픔이며 끝없이 계속되는 극한의 고통입니다. 이 죽음은 그 어떤 죽음보다도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입니다.

굶주림은 체내 수분을 말리고, 체온을 앗아가며, 살을 오그라들게 하고, 체력을 완전히 고갈시킵니다.… 껍질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열매처럼 움푹 들어간 눈은 병들어 잘 보지도 못합니다. 배는 텅 비어 움푹 들어가다 못해 등골에 붙어 있다 보니, 앞에서도 등뼈가 보일 정도입니다. 창자가 제 기능을 못 함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육체를 본체만체하고 지나치는 사람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합니까? 이보다 더 잔인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가장 잔인한 야수요 흉악한 살인자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런 끔찍한 고통을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이기심이나 탐욕 때문에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는 살인자라고 심판받아야 옳을 것입니다. (대 바실리우스, 「기근과 가뭄 때 행한 강해」 7, 노성기 옮김)



고난의 현장에 관한 생생한 보고서

바실리우스(330년~379년경)가 사제로 활동하던 368년에 극심한 가뭄과 기근이 카파도키아 지방을 휩쓸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날마다 굶어 죽어갔지만, 부자들은 곳간 문을 닫아걸고 오히려 돈벌이 기회로 삼았다. 이 처참하고 파렴치한 현실 속에서 바실리우스는 부자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단죄하고, 정의로운 나눔과 사회적 책무를 호소했다.

「기근과 가뭄 때 행한 강해」라는 제목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이 작품은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에서 터져 나온 절규다. 바실리우스 사제는 굶주림에 말라비틀어져 가는 처참한 죽음의 현장을 종군 기자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민중의 고난에 몸소 동참하지 않고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을 가난한 이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바실리우스의 사목 현장이었고 신학의 자리였다. 마침내 바실리우스는 가족 명의의 유산을 털어 무료 급식소를 열었으니, 머잖아 370년에 주교가 되자마자 추진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의 신도시 바실리아드의 마중물이 되었다.



살인자가 되지 않으려면

바실리우스는 가난한 이웃의 비참하고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 자체가 살인이라고 선언한다. 이 가르침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다섯 번째 계명에 대한 사회적 해석에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내 손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지 않았다고 안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씀은 사랑과 자비에 대한 호소”라고 거듭 강조한다.(「수요 일반알현 교리교육」 2018년 10월 17일) 악을 행하지 않은 것으로는 넉넉지 않고, 힘닿는 만큼 자비를 베풀고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끔찍한 가난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으면서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 자체가 바로 살인 행위임을 바실리우스 교부는 일깨워 준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