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사회교리] (27)가난한 이들의 존엄

(가톨릭평화신문)
 
▲ 최원오 교수

 

 


“이 한센병자들도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형제고, 욥이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고 자신의 몸 전체를 증오하면서 말한 것처럼, 이 사람들도 본래 우리와 똑같은 진흙에서 나온 똑같은 본성을 가진 이들이고, 우리처럼 그들도 신경과 뼈로 구성되어 있고 피부와 살로 덮여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 뭉클해집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들 또한 우리처럼 하느님의 형상이며 어쩌면 그들은 비록 외적으로는 참혹하게 일그러졌을지언정, 내적으로는 우리보다 이 형상을 더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뭉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속사람은 동일한 그리스도를 옷 입고 있으며, 그들은 성령의 동일한 보증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도 똑같은 법과 똑같은 계명과 똑같은 계약과 똑같은 교회와 똑같은 신비와 똑같은 희망을 가집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것처럼 또한 그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이 지상의 삶에서는 부족한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들 또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동반자이며, 그러므로 그분의 영광의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 14, 박노양 옮김)



맑은 눈과 따뜻한 마음의 시인 신학자

탁월한 시적 감수성을 지닌 그레고리우스(329~390년)의 강론과 저술은 그대로 시가 되었다. 하느님 백성은 그를 ‘시인 신학자’라 불렀다. 그의 대표 시작(詩作)들은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고향에서 가난한 구도자로 살던 시절에 주로 탄생했지만, 여기 인용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372년경)에서도 하느님의 마음으로 피조물을 바라보고 피조물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얼굴을 읽어 내는 시인의 맑은 눈과 신학자의 따뜻한 마음을 만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이 작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특히 한센병자들의 존엄한 인권과 신적 품위를 장엄하게 선포한다. 몸소 그들 고난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는 주님께서 마침내 당신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해 주시리니, 뭇사람들의 저주와 돌팔매질에 겉사람은 문드러졌을지라도 속사람은 더 온전하고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일회용품이 아니다!

“이들은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마치 한하운의 시처럼 이 세상의 가장 가난하고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온몸으로 외치는 이 교부의 절규는 이 시대 우리 교회가 무엇을 위해 울부짖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일깨워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관행적 적선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을 가장 온전히 드러내는 신적 존엄을 지닌 존재들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한센병이 매우 드문 질환이 되었지만, 사회적 약자들을 사회에서 원천적으로 소외시키는 배제의 문화는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리고, 태아와 노인, 병자와 장애인들을 이 사회에서 거리낌 없이 베어내고 있다.

일상화된 폐기의 문화에 맞서 연민과 연대, 환대와 관용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끈질긴 호소는 가난한 이들의 존엄을 강조하는 아름다운 교부 전통에서 길어낸 것이 분명하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