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평화적 시론(김태균, 그레고리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예상치 못한 ‘노딜’이라는 결과에 봉착했다. ‘스몰딜’과 ‘빅딜’ 사이에서 교차하던 사전 논쟁은 하노이에서 평화체제를 위한 새로운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기대감을 공유했다. 그러나 2019년 연말까지 기약 없이 연기된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연이은 북한의 발사체 발사, 한국의 인도적 식량 지원에 대한 북한의 비난 등으로 이어지는 소강 국면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평창올림픽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회의론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북미 간 정치적 양자 관계에 일희일비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북미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역할론도 한반도 문제를 북미 간 정치적 관계로만 풀어가는 순간, 그 추동력을 잃게 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체인 한국이 선도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게 된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글로벌 규범을 적극적으로 한반도 맥락에 수용할수록 평화의 정치화라는 덫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보편적인 개발 담론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포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내에서 대북지원을 지지하는 시각은 북한과 한민족임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와 북한 식량난에 대한 긴급구호 방식을 선호하는 ‘소극적 평화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식량 원조 중심의 인도주의적 처방은 민족주의와 소극적 평화론을 떠나서 북한 스스로 거부하는 단기적인 해법에 불과하다. 물론 대북제재와 연동돼 있기에 직접 북한과 중장기적인 경제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글로벌 규범으로 2015년부터 인류 공동의 목표로 정착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비핵화 논리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대안적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자주의와 보편적인 글로벌 개발 규범과 접목해 현재 지나치게 정치화된 한반도 평화 문제의 숨통을 터주자는 것이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2030년까지 유엔 회원국 모두가 이행해야 하는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다. 모든 회원국이 4년에 한 번씩 이 목표를 국내에서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목표와 계획을 유엔 고위급정치포럼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은 이를 2016년에 제출했고, 북한도 2019년 안에 제출하기로 약속했다. 북한이 준비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 방식도 북한의 경제발전 중심으로 준비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2019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북한식 사회주의 발전모델’과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까지 북한 정부의 경제발전과 대미 관계 개선, 비핵화에 대한 적극적 행보와 연결지을 수 있다. 유엔 회원국으로서 북한을 인식하고 글로벌 개발 목표를 북한 내부에서 경제개혁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장기적인 개발협력 접근은 북한과 공존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을 확장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교착 상태를 이른바 ‘한반도 지속가능발전목표’ 모색으로 그 돌파구를 찾기를 희망한다. 글로벌 수준의 지속가능발전목표는 각국으로 이행 가능한 국내 수준으로 대체되며, 한국은 2018년에 한국형 ‘K-SDGs’를 잠정적으로 완성했다. 인류 보편적인 목표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도입해 한반도 전역에서 상징적으로나마 공동체 발전에 협력할 수 있는 평화적 시론을 시작하길 바란다. 현재의 소강 상태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지속 가능한 ‘뉴노멀’로 전환할 적기는 2019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