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다시 시작한 성지순례

(가톨릭신문)

성지순례를 다시 시작했다.

2011년 발행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에 나와 있는 111곳 성지는 이미 4년 전에 순례를 마쳤고, 지난 6월 발간된 개정 증보판에 새로 수록된 59곳을 다시 찾아 나선 것이다. 사실 지난 번 순례를 다 마치고 축복장을 받았을 때 흐뭇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왠지 허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새로운 순례지가 생겼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성지순례! 생각만 해도 언제나 가슴이 벅차고 설레는 단어다.

첫 번째로 아내와 나는 여의도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터를 찾았다. 우리는 경기도 용인 동천성당에서 10시 미사에 참례하고 늘 하던 대로 고통의 신비 5단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여의도공원으로 향했다.

“비바 파파! 비바 파파! 교황님 만세!”

35년 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03위 순교복자시성식을 집전하기 위해 여의도광장에 입장하실 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구름처럼 모인 100만 교우가 교황님을 열렬히 환호하며 지른 함성이다. 8월 중순 한낮의 뙤약볕 아래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섞여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당시에는 그곳을 5?16혁명을 기념하는 5?16광장이라 하였고 국군의 날 등 나라의 대형 행사를 치르는 곳이었는데, 어느새 수목이 울창하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이제 넓은 광장은 사라지고 공원 한쪽에 고즈넉이 표지석만이 그날 시성식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날의 함성과 감동을 저 표지석은 알까?

전국에서 얼마나 많은 전세버스가 올라왔는지 우리가 탄 버스는 여의도광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영등포역 근처에 내려 행사장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날 서른 아홉, 세례 3년차의 풋내기 신자로 성당 교우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기를 높이든 기수 역할을 하며 시성식 내내 벅찬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이 땅에 빛을! 한국의 103위 순교자를 성인 반열에 올리노니 세계교회가 공경하기를 바랍니다.”(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표지석에 새겨진 시성 선언문의 일부다. 우리는 그 앞에서 조용히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를 드리고 본당 신부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표지석을 배경 삼아 인증샷을 찍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시작한 첫 순례지 방문을 마쳤다.

약간의 문제도 있었다. 교통혼잡으로 용인에서 여의도까지 가는데 1시간 30분, 다시 돌아오는데 1시간 30분…. 3시간 넘게 운전하다보니 오래전 디스크로 수술한 허리가 제법 아팠다. 한적한 도로 같으면 40~50분마다 쉬었다 가면 그만인데 서울 시내에서는 그러기가 수월치 않았다. 결국 순교자들이 받으신 극심한 고통을 생각하며 이 정도쯤이야 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어려움이 좀 따른다 해도 성지순례는 그 자체가 은총이요 축복이며 성령께서 함께하는 은혜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 다음 순례지는 어디로 할까.

성령께서 어디로 이끄실지 나도 사뭇 궁금해진다.


김종관(율리아노?수원교구 용인 구성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