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아이들 가슴으로 품어 ‘마덜’(엄마)이 돼 주다

(가톨릭평화신문)




“사람이 먼저 통일이 돼야죠. 저희는 남과 북이 하나 돼 통일을 이룬 가정이에요.”

남한 엄마와 새터민 자녀 둘. 말 그대로 한 지붕 아래서 ‘남북통일’의 기적을 이뤄낸 가족이 있다.

“마덜(엄마)~!” 하고 부르면 언제든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둘도 없는 내 편이 돼주는 ‘새터민 선교사’ 김영미(베로니카, 52)씨다. 피 한 방울 섞이진 않았지만, 한국에 오기까지 강제 구금과 기다림의 힘겨운 여정을 거치고, 새 환경에서 또다시 말 못 할 아픔을 이겨내며 사는 새터민 아이들의 보호자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새터민 자녀들을 가슴으로 품고 12년째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를 수원 가정집에서 만났다.

국내 거주 새터민 4만여 명. 오늘날 새터민 상담소나 단기 쉼터는 전보다 늘었다. 그러나 평신도가 아예 새터민을 보듬어 함께 사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08년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이 사도직을 시작할 때, 그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협력자들을 보내주실 것이고, 안 보내주시면 내려놓겠습니다” 하고 기도했단다. 그리고 하느님이 맺어준 인연을 품었다. 내가 낳은 자식도 키우기 힘든데, 그는 ‘엄마’로서 아이들이 받았던 상처, 편견이 덕지덕지 붙은 자리에 사랑을 정성껏 심어줬다. 그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자비의 힘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이 땅에서 당당히 살도록 일러주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전에 새터민 보호기관에서 일했던 게 그가 이 특별한 사도직을 하게 된 계기다. 그를 무척이나 따랐던 아이들이 “옆에 계속 있고 싶다”며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너무 막막했지만 ‘내가 벌어서라도 먹여 살려야지’ 여겼다. “그래, 같이 살자!”

김씨는 현재 20대 미소(효주 아녜스, 가명), 초이(루치아, 가명)씨와 셋이서 산다. 부모와 함께 남한에 왔지만, 형편상 키우기 어려워 함께 지내게 된 이들이다. 김씨는 이들이 코흘리개 초등학생일 때부터 키웠다. 매일 교복 입혀 학교 보내고, 괴롭힘을 당할 땐 교무실도 드나드는 엄마가 돼줬다. 난독증으로 어려움이 있는 미소를 위해 두 팔 걷고 가르쳐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도록 도와주고, 매일 밤늦은 시각까지 입시 공부에 매달리는 초이의 도시락을 싸주고 데려다 주는 양육을 계속하고 있다. 초창기 함께 살았던 미래(소사 체칠리아, 가명)씨와 태어날 때 직접 탯줄까지 잘라줬던 동하(하상 바오로, 가명)군도 인근에 살고 있어 친정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



가족 이야기 담은 책 펴내

김씨의 따뜻한 가족 이야기는 최근 그가 펴낸 「마덜, 영미」(프란치스코출판사 / 1만 3000원)에 가득 담겨 있다. 김씨는 이들 외에도 인연을 맺고 있는 새터민 가정, 자녀를 위한 상담사 역할도 하고 있다. “현재 아버지와 오빠 식구가 사는 친정집 위에 함께 살고 있죠. 이 집에 들어올 때 흔쾌히 받아준 가족, 그리고 낡은 집 구조를 돈 한 푼 받지 않고 새집으로 고쳐준 형제님, 익명으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분들. 그리고 영적 아버지로서 휴가 내서 아이들과 나들이, 부활ㆍ성탄 파티를 열어주시는 신부님들까지. 이 집의 TV, 냉장고, 소파 모두 다 선물로 받은 거예요. 모든 게 하느님 계획입니다.”

모두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도 매일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을 사는 김씨 덕분이다. 이후 가족은 매주 미사에 참여하며 기도 속에 사는 ‘성가정’이 됐다. 미소는 혼자 매일 아침 초를 켜고 기도하고, 신부님 강론을 필사하고 있다. 한창 입시 공부에 바쁜 초이도 주일 미사에는 꼭 참여한다. 밝게 자란 저변에 신앙의 힘이 있는 것이다.

“멘토 신부님과 함께 있는 단체 메신저 방에 강론 말씀이 올라오면 각자 소감을 올려요. 아이들이 신앙이 주는 사랑의 의미를 익혔는지 자기 용돈을 쪼개서 매달 나눔도 실천하고 있죠.”

여전히 그에게 “아이들 어디서 왔어?”, “왜 그렇게 퍼줘?”라며 색안경 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는 “예수님이 피 흘리시면서 무조건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그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한다”고 했다.



갈라진 형제가 함께 사는 것

“우린 서로 ‘마음의 유대’가 필요합니다. 무조건 ‘한국에 오면 한국법을 따라라’라는 사고는 옳지 않아요. 사람과 마음이 서로 통일돼야죠. 남북은 본래 하나였기에 하나여야 하는 거예요. 갈라진 형제가 함께 사는데 왜 정치 이념이 필요할까요? 손 내밀지 않으면 전체가 절대 행복할 수 없어요. 누구나 와서 마음을 나누는 ‘열린 공간’을 아이들이 운영하도록 해주는 게 꿈이에요. 얘들아, 하느님께선 분명 큰일을 하시기 위해 너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셨을 거야. 매일 기도하고 감사하자. 사랑한다.”

도서 구입 문의 : 02-6325-5600, 프란치스코출판사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