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눈] 참으로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 김형태

(가톨릭신문)
가을이 또 지나갑니다. 지난 주일, 집 2층 옥상까지 감아 올라간 수세미며 박주가리 덩굴을 걷어냈습니다. 노랗게 마른 수세미 세 개 그리고 여름 내내 짙은 향을 뽐내던 흰 꽃들 자리에 빼곡히 매달린 박주가리 열매들.

수필가 피천득은 ‘봄’이란 글에서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이 마흔 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했습니다. ‘나이 마흔살이 넘은 사람.’ 고등학생 시절 그 글을 읽으며 나는 피천득 선생을 인생을 다 살아버린 노인으로 받아들였더랬습니다. 이제 그보다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은 나는 수많은 봄과 가을을 보내고 또 맞으며 아직도 무슨 미련이 남아, 지나가는 가을을 서러워합니다.

지지난 봄 나는 한 늙은 명사(名士)의 변론을 맡았습니다. 세상에 공(功)과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요. 그 노인 역시 그러했습니다. 공이 이미 높아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만큼이나, 그의 허물에 대한 세상의 비난은 가혹했습니다. 지난 시절 그를 향한 칭찬도 과했고 지금 그를 향한 욕보임도 과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비했습니다. 어디 제 한 몸 부릴 만한 조그만 틈도 없는 무간지옥.

엊그제 그 노인 재판하러 가는 길에 법원 현관에서 대학 시절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역시 법원의 고위직을 지내다가 사법농단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 처지가 됐습니다.

인혁당사건, 조작간첩사건, 유신치하 긴급조치위반사건, 보도연맹사건 등등. 그가 참여한 법원은 내가 맡은 수많은 과거사 사건들에서 법리에 어긋난 정치적 판결들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한 번 울었던 이들이 그 판결들 때문에 두 번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잘잘못을 떠나서 나는 뉴스에 매일 나오는 친구의 처지가 딱해서 그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습니다. “힘내라.”

어제 잘 나가던 이들이 오늘 욕된 이름을 덮어썼으니 참으로 제행무상입니다. 마치 한여름 이글대는 햇살에 맞서 푸른 빛을 뽐내던 모과나무 잎들이 그만 누렇게 시들어져 어느 가을바람에 후드드득 다 떨어져 내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불가에서 말하는 ‘제행무상’의 본래 의미는 그저 모든 것이 ‘허무하다’로 끝나는 게 아니랍니다. 영원히 고정돼 있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세상의 실상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적극적인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걸 누가 몰라?’ 이렇게 쉽게 반문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내 재물이나 권력, 명예가 영원할 거라 믿고, 내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에도 내가 천당이나 지옥에, 혹은 윤회를 통해 영원히 존재할 거라 여깁니다.

한스 킹이라는 교수 신부는 개신교 최고 신학자인 불트만과 ‘육신의 부활’ 교리에 대해 토론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더군요. ‘육신’이 어느 한 사람의 온 생애를 담은 인격을 뜻한다면 그런 부활은 있고, 단순히 생리적으로 동일한 생명체를 뜻한다면 그런 부활은 없다고. 제행무상이라는 거지요.

저 노인이나 내 친구도 명예와 권력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이에 집착하다가 결국에는 재판 받고 뉴스에 오르내리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집 마당의 수세미도, 모과나무도, 이 내 몸, 이 내 생각도 여러 조건들이 모여 임시로 그러한 것일 뿐. 그리고 이 조건들 또한 끊임없이 변해가니, 이런 연기(緣起)의 이치를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삼라만상이 저 스스로에서 유래한 건 하나도 없고 모두가 전체이신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거지요. 이런 제 본분을 잘 알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게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제대로 행하는 거겠지요.

욕심이 끓어오르거나, 미움이 솟구쳐 오를 때 그런 자신의 마음 움직임의 시작과 끝을 제행무상의 관점에서 타인이 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늘상 하게 되면 마음에 끄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된다는 게 불교 위빠사나의 가르침입니다.

제행무상을 제대로 아는 이는 이런저런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립니다. ‘희랍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이런 묘비명처럼 말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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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요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