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세계화와 포용적 비즈니스(설지인, 마리아 막달레나, 개발금융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포용적 비즈니스(Inclusive Business)’가 변화하고 있다. 하루 10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을 고객, 생산자, 혹은 공급자로 하여 상당한 사회적 혁신을 일으키는 포용적 비즈니스는 지난 10년간의 추이를 살펴보면 눈에 두드러지는 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 사업의 수익성이 높아졌고,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두 동력은 ‘디지털화’와 ‘비서구화’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2018년 한 해에만 3억 5000만 명이 난생처음 온라인 경제권 안으로 더 들어왔다. 과거 세계화 과정에서 이들은 다국적 기업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주력하여 성장하는 기업들이 중국, 인도, 나이지리아와 같은 곳에서 등장하고 있고, 이들 중 일부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포용적 비즈니스의 양상은 얼마 전 타계한 클레이턴 크리스턴슨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떠올리게 한다.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기존의 선도 기업이 가장 수익성 높은 고객층에 집중하는 동안 새로이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그간 간과되고 있던 고객층을 낮은 가격의 제품·서비스로 겨냥하는 것이다. 기존 기업들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 진입기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진입기업이 점차 주류 시장과 상층부로 올라가 기존 기업의 고객들이 진입기업의 제품을 대거 선택한다면 파괴적 혁신이 일어난 것이다.

포용적 비즈니스가 세계 시장에서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지는 앞으로의 세계화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와 직접 연동되어 있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경제를 형성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화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 기술들은 현존하는 빈부차를 심화시킬 가능성도 크고, 그 반대 기능을 할 잠재력 또한 지난 어느 때보다 크다. 이미 기술이 변화하는 속도를 규범과 시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가올 세계화의 모습에 대해 구상하는 지금, 누가 더 빠르게 이러한 기술로 그간 간과된 세상의 필요를 급진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는 새 시대의 세계화를 상상함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지난 10여 년간 기존의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한 수천 개의 포용적 비즈니스 시범사업 중 5개국 이상으로 확장되거나 3000만 명 이상의 고객층을 포섭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경우도 다른 시장에 적용하기 불가능하거나 수익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도국 고객층을 대상으로 저가(低價) 윈도우 운영체제 사업을 시작했다가 결국 사회공헌 활동으로 전환한 것처럼 말이다.

반면, 2009년에서 2014년 사이 20개의 유니콘 기업이 생긴 이래 2014년에서 2019년 사이 370개의 새로운 유니콘들이 생겨났고, 이들 중 3분의 1가량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지역 태생이다. 이들은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공, 나이지리아, 브라질, 컬럼비아 등지에서 하루 10달러 미만으로 사는 빈곤·저소득층을 적극적으로 사업에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시장과 기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의 시작지점으로 우리를 회귀시켜 놓는 듯하다. 새로운 경제 지평이 열리고 있는 시대. 포용적 비즈니스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