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단상] ‘천사섬’의 삼종기도

(가톨릭신문)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천사섬으로 호칭되는 전라남도 신안의 작은 마을에서 나날이 바쳐진다는 삼종기도의 내력은 듣는 이에게 감동과 환희를 줬다. 삼종기도는 새날을 맞이하는 시작기도, 일터에서 쉼을 알리는 휴식기도, 하루를 마감하는 마침기도다. 조용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혼자 바치는 삼종기도는 성찰과 보람을, 더불어 공동체가 함께 바치면 일치와 화목을 느끼게 한다.

신안은 연륙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아 사목활동이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사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안군 암태면 신석마을 주민들은 가톨릭에 입교해 신자로서 신앙공동체를 구성했다. 거룩한 주님의 날에는 공소예절을 지키고 하루의 시작과 마침에는 삼종기도가 빠지지 않는다.

지역신앙공동체는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단위와 농촌지역의 특성이 서로 얽혀 단단히 정착됐다.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일손을 놓고 그 자리에서 삼종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흡사 ‘밀레의 만종’과 같은 분위기였을 것이다. 이어지는 신석성당 교우들의 이야기는 주님의 평화가 아름다운 산하에 생기를 돋우는 봄비와 같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남녘 서해안에 앉은 신안군은 천사(1004)섬이다. 신안의 천사섬은 천네개의 섬들이 바다에 돌다리를 놓은 듯 옹기종기 모여 천사(天使)가 거닐 것 같은 아름다운 지역이다. ‘이름 값’을 하듯 곳곳이 절경이고 만나는 사람들 얼굴에는 여유와 풍성한 인심이 넘친다. 오랫동안 육지와 단절된 섬들은 뭍과 왕래가 쉽지 않아 자연과 관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도서지방 국토개발사업 진행에 따라 연륙교 개통으로 목포에서 신안 압해도가 연결되고 최근에 천사대교(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총연장 10.8㎞) 개통으로 신안의 중요 다섯 개 섬들이 육지화돼 주요 관광지가 됐다.

여행의 우선순위를 성당과 공소 순례에 두고 신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신앙을 다듬고 되돌아봤다. 성당과 공소순례를 통해 주님의 현존과 창조사업에 대한 찬미와 감사기도를 드리는 시간은 유익한 기회였고 하느님의 섭리와 자비는 가없는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적 왕래가 쉽지 않았던 섬에 주님의 자비와 은총의 씨앗이 싹을 틔워 자리 잡은 신앙의 보금자리가 풍광과 어우러져 보기가 좋았다. 더위에 시원함을, 추위에 따뜻함을 나누는 신앙공동체가 천사섬에 있다. 신안군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에는 신안인덕본당이 신석성당, 읍동성당을 관할해 한 분의 신부님이 사목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읍동성당을 방문했을 때 마침 신석성당 평일 저녁미사 집전을 위해 출발하는 신부님을 따라 신석성당으로 향했다. 수녀님이 상주하지 않아 전례봉사자(평신도)들이 마련한 제대에서 거룩한 미사를 드렸다. 농기구를 잡았던 손을 곱게 모으고 기도하며 우렁차게 부르는 성가는 천상음악처럼 들렸다. 거룩한 공동체 미사에 참례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감사미사 예물봉헌을 했다. 신부님의 강복과 받아 모신 성체는 기쁨과 축복이 되어 온 몸을 감쌌다. 영성체 전에 이루어진 ‘평화의 인사’는 모두를 십년지기 고향친구 같은 반가움과 미소를 나누게 했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 마당에서 이루어진 교우들과 어울림은 잔칫집 마당 분위기였다. 성당의 내력과 일상생활 이야기, 연륙교 개통으로 달라진 풍경, 순례자를 위하여 마련한 성당 펜션 등에 관한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종소리가 귀를 울리는듯하여 고개를 드니 종탑이 보였다. 파란 하늘에 걸려있는 종탑에서 사방으로 퍼져간 종소리에 따라 일손을 놓고 두 손 모아 드리는 삼종기도의 모습을 떠올렸다. 신안은 천네(1004) 개의 섬 지역이 아니라 천사(天使)가 내려온 섬이 분명하다. 천사들이 합창하듯 성당 마당에는 온통 천사들뿐이었다.


※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최상원(토마스)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