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 하느라 애썼다며 주님께서 주신 상 같아요

(가톨릭평화신문)
▲ 작품 ‘만나(MANNA)’ 앞에 선 이정지 화백.



여든의 원로 화백의 입에서 연신 ‘기적’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이번에 제가 가톨릭 미술상을 받은 것은 모두 하느님 은총이요, 기적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동안 애썼다’며 주신 생애 가장 특별한 상이죠. 주님 영광을 위해 순종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답해주신 주님의 상이라 여깁니다.”

‘단색화의 대가’로 국내 화단과 성미술계에서 독자적인 단색조 화풍으로 반세기 화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정지(루치아, 79) 화백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띠며 소감을 전했다. 여류 단색화가의 선구자로서 오랜 세월 수백여 개 작품과 평생 30차례가 넘는 국내외 대형 전시를 열어온 그가 제23회 가톨릭 미술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자신이 빚어낸 대형 작품들이 즐비한 작업실에서 만난 이 화백은 “코로나19 사태로 시상식은 연기된 상황이지만, 지인들의 쏟아지는 축하 인사가 제겐 곧 시상식”이라며 웃었다.

그가 평생 일관해온 단색화는 묵시적이고, 비장식적이며 설명이 부연 되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 이 화백 말대로 ‘닫힌 구조’를 지향하는 단색화는 다양한 색상을 마음껏 활용하는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한두 가지 색상만으로 작가의 모든 의도를 한 화폭에 담아내야 하는 ‘절제의 미’를 품고 있다. 이 화백은 “제 작품을 탄생시켜온 원동력은 묵주였다”면서 “기도 중에 만난 묵주의 성모님께서 해답을 주셨고, 제 모든 작업은 믿음과 기도, 주님과 대화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기도 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것이 성미술”이라고 했다.

이 화백은 나이프로 색을 긁어내는 독특한 기법으로 단색조의 외길 화업을 이어왔다. 그간 주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색조 추상화를 그 고생하며 고집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소위 돈 되는 작업보다 단색화 안에서도 심오한 색 연구를 통해 이 화백만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적 성향을 이어왔다. 1990년대에 이미 단색화에 문자를 끌어들여 화단의 흐름을 이끌었고, 이 같은 그의 시도가 성미술 작품들에도 접목돼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1970년대 초반부터 임해온 성미술은 하느님과의 약속이었다. 어린 시절 밤낮 묵주신공에 매달렸던 할머니의 손을 잡고 명동성당을 다니며 자연스레 익힌 신앙심 또한 큰 바탕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그가 ‘O 시리즈’를 주제로 화폭에 담아온 동그라미 형상은 둥근 묵주, 성체, 빛나는 만나의 모습을 띤다.

“늘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할머니의 모습,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던 미사보를 보며 한때 ‘할머니, 나 수녀님 해도 될까?’ 했던 적도 있었죠. 인왕산 자락 빨래터에서 마주했던 꽃과 풍뎅이, 바위에 새겨진 글씨에다 그림밖에 몰랐던 제 삶의 경험이 지금껏 신앙과 미술을 하도록 이끌어준 것 같습니다.”

그가 밝힌 자신의 “골수에 박힌 신앙심”은 1968년부터 20년 동안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재직 시절에도 발휘됐던 것 같다. 그는 밤새 실기 과제에 매달리느라 씻지도 못하는 제자들을 보며 측은한 마음 탓에 학점 주는 것마저 무척 어려워했고, 때마다 말없이 다가가 “밥은 먹었니?”하고 챙기는 교수였다. 현재 화단을 이끌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는 늘 “신자든 비신자든 성가정을 이루며 살아라. 그래야 작품도 잘 된다”고 신앙적 소신도 심어주고 있다.

이 화백은 “돌아보면 삶의 고비, 작품을 탄생시키는 인고의 시간마다 하느님은 제게 ‘일어나. 너 지금 뭐 하고 있니?’ 하며 저를 불러주셨다”며 “성미술계의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뒤를 이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고, 하느님이 계셨기에 고통을 연구하고 인내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느님께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 종교와 예술은 동의어입니다. 우리 민족만이 지닌 무채색과 단색의 느낌을 앞으로도 꾸준히 담아 전할 계획입니다. 저 이정지만의 그림으로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일은 계속돼야죠.”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